국제 통용 명칭인 암호화폐로 불러야 마땅하다

경영학을 전공한 필자는 대학교 3학년 때 ‘자본시장’과 ‘주식’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을 무작정 찾아가 모 펀드 매니저를 붙잡고 주식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분은 배우고자 하는 어린 대학생이 기특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분의 의견을 참고해 처음 매수했던 종목은 ‘대림산업’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200만 원을 투자해 약 30% 정도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1998년 그 당시에도 인쇄된 실물 증권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오로지 컴퓨터로 HTS(Home Trading System)에서만 ‘잔고조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수익이 난 금액을 인출할 수 있었습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는 오래전의 기억입니다.

필자가 오래된 기억을 소환한 이유는 ‘유가증권’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유가증권(有價證券, securities)이란 재산적 가치를 가지는 사권(私権)을 표시하는 것으로 재산권의 원활한 유통과 이용을 도모하는 증서이다. 줄여서 ‘증권’이라고도 불린다.”

쉽게 풀어 말하면 문서에 무엇을 얼마나 갖고 있는 지를 적어놓고 법적 공증을 통해 상법상의 재산권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유가증권은 소유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그 종이 문서 자체가 재산권이기 때문에 분실하면 그 재산을 잃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즉 소유자가 항상 변할 수 있으며 양도, 구입, 판매, 증여 등이 매우 쉽게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화폐와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화폐 역시 유가증권의 일종입니다. 다른 증권들과 차이가 있다면, 현대의 화폐는 발행국가에 한해 어디서나 액면가 그대로 받아주지만, 다른 종류의 유가증권은 액면가 그대로 받아주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게 다릅니다.

그 종류에는 기업의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자본증권’, 상품을 구매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상품증권’, 화폐로 사용되는 ‘화폐증권’ 등 3가지로 구분합니다. ‘자본증권’은 주식증권과 채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언급하는 ‘주식(stock)’은 주로 ‘주식증권’을 줄여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주식’이나 ‘증권’도 원래는 종이에 기록하고 통용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디지털’화 돼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법적으로 보호되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상호간 약속 하에 ‘디지털 공간’에서 매매하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식’은 기업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역할과, 개인들이 소액으로 기업의 미래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자본시장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증권’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 ‘증권’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그 ‘증권’은 가치(value)를 갖게 됩니다. 그 가치는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수익성에 따라서 성장하거나 퇴보합니다.

21년 7월 27일 민형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자산산업 육성과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특금법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명명하고 있으나 암호화폐 등과 관련한 산업육성은 미흡한데 규제만 가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엄연히 존재하는 시장을 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모순이다. 현행법 체계 안에서 다룰 수 없는 신산업인 만큼, 법 제정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에 우선 ‘가상자산’을 ‘디지털자산’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아울러 관련 제도를 마련해 현실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는 건전한 산업육성과 관련 시장 이용자 보호를 동시에 이루고자 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디지털자산 사업자 등을 먼저 정의하고 디지털 자산업 육성계획을 수립, 시행한다.”와, “금융위원회에 사업자 등록을 하며 디지털자산 발행 시 심사를 받도록 규정한다.”, 그리고 “디지털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고 불공정 거래행위를 금지한다.” 등입니다.

암호화폐와 관련된 국회의원들의 입법발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8월 2일 금융위원회는 최근 가상자산사업자를 금융업으로 분류할 계획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윤창현 의원실 질의에 “가상자산은 금융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서면으로 밝혔습니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이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본인 책임 하에 신중하게 거래 행위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도 재차 강조했습니다. 앞서 윤 의원은 국내 4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에 가입한 600여만 명의 회원을 감안할 때 가상자산업을 제도권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업계의 의견을 금융위 측에 전달했으나 금융위는, “가상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일관되게 유지해왔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고 답변하면서 코인이 금융자산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선진, 신흥 20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의인 G20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도 현재 가상자산을 금융자산이 아닌 것으로 판단 중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해) G20은 탈세, 자금세탁, 이용자보호 등의 문제 가능성을 지적했고, IMF는 비금융 자산으로 분류했다”며,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도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분류해 금융자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8월 2일자 기사에 따르면 독일은 특수 펀드(Spezialfonds)에 적용되는 새로운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4,150억 달러 상당의 투자가 암호화폐로 유입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독일 기관펀드는 자산의 최대 20%를 암호화폐로 보유할 수 있게 되면서 국가 연금 기금이 비트코인 및 기타 암호화폐 자산을 주류로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한 발 앞서가는 정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글의 서두에서 필자의 경험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우리가 현재 투자하고 있는 ‘주식’도 암호화폐처럼 디지털 자산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호화폐’는 카지노에서 사용되는 게임 칩 같은 ‘가상화폐’가 아닙니다. 해외에서 통용되는 용어인 ‘암호화폐’로 명명되어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이 명칭이 거부감이 있다면 4차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최소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를 부여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난번 글에서 밝혔지만 ‘디지털 뉴딜’ 정책 속에 블록체인 시범사업과 확장사업 모두 포함되어 있고, 국민의 600만 명 이상이 투자에 참여하면서 ‘암호화폐’는 이미 ‘유가증권’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상자산’으로 명명하면서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특금법이 발의되었으나 여전히 ‘가상자산’으로 불리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네이밍은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필자를 아낌없이 격려해주시고 지원해주신 이모님이 캐나다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런 이모님의 집이 낡아서 보수하는데 사용하시라고 한화 약 천만 원을 송금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캐나다 은행으로 송금하는 과정이 참 복잡했습니다. N뱅크 은행원이 해외송금에 서툴기도 했지만, 기재 항목이 복잡하다 보니 이모님께서 영어로 된 은행코드를 잘못 받아 적기도 하면서 절차가 까다로웠습니다. 송금 수수료도 10만 원 가까이 들었으며, 시간도 이틀 이상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리플’로 송금했다면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을 말입니다.

만약 필자가 ‘리플’로 송금을 했다면 이 자금은 ‘가상자산’입니까, 아니면 ‘디지털자산’입니까?

이번 주 글을 마치겠습니다.

[필자=키웨스트]

현 (주)키웨스트77 대표

아모레퍼시픽/이니스프리 21년 근무

성균관대 SKK GSB 글로벌 MBA 수료

★ 위 내용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으며, 투자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으니 신중한 투자를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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