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린 더브릭스 대표ㆍ개발진 인터뷰 … '자살 예방' 키워드ㆍ우리 주변에 대한 관심 촉구

왼쪽부터 '더브릭스' 권은령 프로그래머, 이혜린 대표, 김지윤 기획
왼쪽부터 '더브릭스' 권은령 프로그래머, 이혜린 대표, 김지윤 기획

34.1명.

중앙자살예방센터(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가 지난 2019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국내 자살사망자 수는 약 1만 2463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으로 따지면 약 34.1명의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표준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3.0명으로 OECD 평균인 11.2명보다 약 2배 정도 높다. 

‘더브릭스’의 이혜린 대표는 학생 시절 이 같은 국내의 자살 실태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루 34.1명이 사망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극단적인 시도가 많이 일어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평소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게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당시 자신이 느낀 충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디게임 제작을 결심했다.

이 대표는 대학생 연합 게임 제작 동아리 ‘브릿지(BRIDGE)’를 통해 자살 예방을 소재로 한 게임을 제안했다. 무거운 작품 주제였지만 뜻에 공감한 인원들이 모여 8인 개발 팀 더브릭스를 구성했다. 이들은 자살로 인해 한달 뒤 사망이 예고된 등장인물의 주변인이 돼 자살을 막는 어드벤처 게임 ‘30일’의 제작을 시작했다.

더브릭스라는 사명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벽(Bricks)을 뜻한다. 이 대표는 “유저들이 현실의 벽을 만나 좌절을 겪을 때 더브릭스의 게임을 통해 눈 앞에 마주한 벽을 부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사명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더브릭스가 제작한 어드벤처 게임 ‘30일’은 자살 예방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 소재와 뛰어난 게임성을 통해 지난해 ‘방구석 인디 게임쇼(BIGS)’를 시작으로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인디크래프트’ ‘플레이엑스포’ 등 각종 인디게임 쇼케이스에 출품했다. 특히 BIC에서는 내러티브 부문과 소셜 임팩트 부문에 후보작으로 선정되며 관객과 평단의 입소문을 탔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1월 실시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2달 동안 목표치의 7배가 넘는 약 1300만원을 모금하는 등 유저들의 큰 관심을 증명했다.

이 대표는 ‘30일’ 작품에 대해 “자살 예방이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지만 굉장히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하다”면서 “일상 속에서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노력과 방법에 대해 유저들과 서로 공감하고 논의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유저들의 많은 공감에 힘입어 ‘30일’은 이달 중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정식 출시를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던 더브릭스의 이혜린 대표, 김지윤 기획, 권은령 프로그래머를 만나 더브릭스와 ‘30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누군가의 삶을, 어쩌면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30일'

‘30일’ 작품은 유저가 고시원의 총무 ‘박유나’를 통해 30일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할 예정인 고시생의 죽음을 막는 노력을 그린 스토리 어드벤처 작품이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팀원 모두의 아이디어를 공모해 제작된 스토리다. 텍스트 분량만 약 3만 단어로 웬만한 장편 소설보다 긴 정도이며, 최소 6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상정하고 있다. 멀티 엔딩을 지원하며 작품 속 등장인물과의 대화 속 선택지를 통해 30일 후 다양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유저들은 플레이 도중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어떤 행동이 가장 효과적인 자살 예방 방법이었는지 등을 생각하며 주인공을 해피 엔딩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 대표는 작품 스토리에 대해 “자살 예방이라는 주제 의식과 메시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작품이 갖는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시나리오에 큰 힘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또한 자살이라는 주제가 팬터지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스토리 구성을 여러 차례의 현실 고증을 통해 제작했다. ‘30일’ 작품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유저들이 주변에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치밀한 디테일 역시 ‘30일’이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의 강점이다. 더브릭스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시원의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송파구 잠실동의 모 고시텔과 파주에 위치한 고시원 등을 현장 답사하며 작품을 제작했다. 고시원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등장하는 소방 훈련 등 다양한 이벤트의 영감을 받았으며, 아트 역시 현장 답사 경험을 살려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완성했다. 또한 고시원 복도, 주방에 비치된 공용 물품, 각 방마다 비치된 소화기 등 배경 속 디테일에도 집중했다.

이 대표는 “현장 답사와 인터뷰를 거치며 작품의 이야기가 점차 깊어졌다”면서 “다양한 연령층 및 여러 상황에 놓인 분들의 경험을 토대로 등장인물을 늘리고 입체적인 인물상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작품 속 휴대폰 기능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프로필 사진, 상태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서로 대화를 나누며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느낌을 파악하는 등 곳곳에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자살이 일어나는 원인, 위험군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더브릭스는 이를 통해 등장인물의 다양한 심리 상태 및 자살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여러 요인을 작품에 녹여냈다.

‘30일’은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만큼 작품의 아트가 시나리오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다. 아트의 톤을 어둡게 구성하면 너무 진지하고 우울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연필 같은 러프한 느낌과 텍스쳐를 사용해 친숙한 분위기를 줄 수 있도록 작업했다.

사운드 역시 개성이 뚜렷하지 않도록 화성적 진행과 파트 구성을 반복했다. 작품의 4개 배경음 모두 하나의 멜로디를 변주했으며, 큰 맥락이 튀지 않도록 제작했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유저들의 시나리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사운드와 아트는 도드라짐보다는 어우러짐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더브릭스' 개발일지.
'더브릭스' 개발일지.

# 소통이 성장의 원동력

‘30일’은 2019년 처음 개발을 시작한 이래 2년간의 긴 개발 기간을 거친 대기만성형 작품이다. 작품의 첫 삽을 떴을 당시 다양한 공모전에 지원했으나 번번이 탈락을 경험했고, 더브릭스는 이로 인해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작품의 시나리오를 맡은 김지윤 기획은 개발 중 어려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개발은 항상 어려웠다. 텍스트로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때와 실제로 작품을 만들었을 떄는 괴리감이 굉장히 컸다”며 개발 당시를 회상했다. 김 작가는 처음 생각했던 기획과 완성된 작품이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며, 이 때문에 시나리오 후반부를 완전히 갈아엎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출시 일정이 한 차례 미뤄진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

작품의 터닝포인트는 ‘2020 BIGS’ 출품이었다. 많은 유저들이 행사를 통해 ‘30일’의 데모 버전을 플레이하고 다양한 피드백을 더브릭스에 전달했다. 유저 피드백을 수용해 전반적인 작품의 퀄리티를 갖춘 더브릭스는 지난해 10월 개최된 ‘2020 BIC’에 출품하며 더욱 많은 피드백을 받기 위해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행사 종료 후 팀원 모두가 모여 6시간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으며 오브젝트 상호 작용, 말풍선 구분, 빠른 이동 추가와 같은 유저 편의성과 인터페이스를 포함해 작품의 큰 틀을 바꿨다. 이후 수정을 거쳐 새롭게 공개된 데모 버전은 유저들에게서 큰 호평을 이끌어 냈다.

더브릭스는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SNS를 통한 유저들과의 소통 및 피드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매달 개발일지를 작성해 공개하며 작품 개발 상태를 유저들과 공유하는 한편, ‘30일’ 작품의 공식 카페를 개설해 사전 예약 인증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업체와 작품의 팬덤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유저분들의 피드백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발전을 위해 길을 열어뒀던 것이 지금의 ‘30일’을 만든 원동력”이라며 “유저분들의 칭찬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 조금 더 주변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30일’은 이달 중 구글 플레이를 통해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작품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해 모든 사람들이 주변에 관심을 갖고 자살 예방에 힘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품에는 따로 사업 모델(BM)이 없으며 플레이 방식도 어렵지 않게 구성했다. 조금만 주변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누구나 해피 엔딩까지 진행할 수 있다.

더브릭스는 내년 초 PC를 통해 ‘30일’의 유료 버전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유료 버전에서는 스토리의 분량이 늘어나며 총 16개였던 엔딩 개수 또한 20여개로 증가한다. 또한 이 밖에도 수집 요소 등 작품 콘텐츠 면에서 여러가지 보강이 이뤄진다.

특히 더브릭스는 오는 9월 10일 예정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세한 사항은 당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끝으로 “출시가 너무 설렌다. 출시까지 올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와 후원해주신 팬분들이 있었기에 출시가 가능했다. 출시 전과 후가 한결 같은 업체가 되도록 언제나 노력하겠다”라며 말을 맺었다.

[더게임스데일리 이상민 기자 dltkdals@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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