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다. 문화계 주요 인사로 구성된 문화융성위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문화 융성을 위한 국가 전략과 제도 개선 그리고 비전 제시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정권이 새롭게 출범할 때 마다 생겨나는 민관 위원회와는 달리 이번에는 대통령 직속의 자문기구로 격상된 것이 특징이다.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대중문화를 선도한다는 이들이 망라돼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게임계의 인사가 빠져 있다. 옥의 티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거기까지는 아직 아니지 않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겠으나 분명한 것은 게임계의 인사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게임산업을 꼽고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일 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게임업계의 인사를 슬그머니 제외시켜 놓았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용창출 능력과 뛰어난 부가가치 그리고 추종을 불허하는 청정 산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게임산업은 매년 높은 성장해 왔다. 대중문화의 지표가 되는 영화산업 규모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다. 

 대외 경쟁력은 타 산업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국산 온라인게임은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주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주력 상품군이 콘솔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바뀌면서 국산 온라인게임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국산 모바일게임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한류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 원조는 게임이다.

 이 만한 산업을 현 시점에서 찾아 볼 수 있다면 그 것은 엄청난 행운이거나 아니면 그저 몽상가의 꿈일 뿐이다.
  그럼에도 게임산업은 늘 뒷전이다. 제 몫을 못 찾아 먹는 것인지 아니면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인지 그 까닭을 들여다 보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지난해 말 정권 인수위가 출범하고 이어 청년위가 발족하면서 청년 위원으로 게임업계의 한 인사가 발탁되자 게임업계는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기뻐했다. 

 게임업계가 인수위 인사를 보면서 이처럼 즐거워한 까닭은 그 인사의 후덕함도 그 것이지만 새 정부 들어 게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게임산업은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시장은 침체됐고 유일한 산업 인프라 기관인 게임산업진흥원은 타기관에 흡수 합병됐다. 또 2011년 11월에는 산업계에 치욕적인 ‘셧다운제’가 시행됐다. 학교 폭력이 심화되면서 게임은 그 배경의 원인이 됐고 청소년 폐인의 공모자가 됐다. 산업인으로서 자긍심과 명예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 와중에 인수위의 발표는 실로 낭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인수위의 활동이 끝나면서 그 모든 것이 그 것으로 끝이 났다. 정부의 게임에 대한 규제 정책은 더 맹렬했다. 작은 희망의 빗줄기를 기대했던 게임업계는 낭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결정적일 때마다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이유는 뭘까.  
 
게임업계 인사들은 솔직히 자랑할 줄도, 자신을 내세울 줄도 모른다. 또 격에 맞는 행동을 기층 세력의 흉내 내기 또는 가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게임업계 인사들이 너무 가볍거나 품위가 없다는 지적을 듣는다고 깎아 내리기도 한다. 

 또다른 사람들은 게임업계 사람들이 세상의 눈높이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생업에 주력하는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로지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자기 이기주의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 덩치 값을 못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 곳이 게임업계라는 지적도 많다. 

 도서관을 지어 사회에 기증해야 함에도 도서관에 들어갈 서적을 기증한다거나, 엄청난 순익을 거둔 데 대해서는 늘어지게 자랑을 하면서도 사회 공헌 등 나눔에 대해서는 낯 뜨거울 정도로 인색하게 하는 경우가 그 것이다. 한마디로 십수년의 성상을 쌓은 산업 덩치에 비해 하는 행동은 너무 어리고 아동스럽다는 것이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격에 맞춰 주는 자리가 아니고 문화 융성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다면 게임업계를 굳이 따돌릴 이유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것은 문화 융성위가 형식적인 원로 위원회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미래 문화 먹거리를 풍성히 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됐다면 게임업계가 아동스런 모습을 일신하고 당당한 어른으로서, 문화의 주변인이 아니라 새 문화를 열어가는 산업인의 주체로서 보다 큰 자긍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자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하느냐고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게임업계 인사들에게는 사회적 감투가 적절히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런 자리가 자신들을 냉철히 내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자 자화상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더 통절하게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언필칭 동화작용이 필요한 게임업계에 사회적 감투 또는 자리는 촉매제라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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