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30년 가깝다. 특별히 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데도 개나리, 진달래, 장미 같은 예쁘고 고운 우리말 꽃 이름 아파트에 세 번씩이나 살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는 ‘칸타빌레’라는 외국 음악용어가 붙어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노래하듯이’라는 이 용어의 뜻과 아파트 사이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듯하다. 건설회사에서 별 생각 없이 그저 갖다 붙인 것이리라.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은 국적불명의 외국어로 도배질되고 있다. 제일 흔한 것의 하나인 ‘빌’부터 그렇다. ‘빌’은 아마도 불어의 ‘Villle’일진데 이는 ‘도시(영어의 City)’에 해당한다. ‘마을’을 뜻하는 영어 ‘Village’도 아닌 빌을 아파트 이름에 붙이는 건 영 아닌데 말이다.

 

‘캐슬’은 또 뭔가? ‘집은 각자의 성(城)’이라는 좋은 뜻에서 붙였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방 몇간의 아파트에 캐슬을 붙이는 건 좀 지나쳐 보인다.


연로한 어르신들은 외국명 아파트 이름이 곤욕스럽다. 국민은행 간판을 모두 ‘KB’로, 농협을 난데없이 ‘NH’로, 토공(土公) 주공(住公)을 통합한 뒤 ‘LH’로 바꿔버렸을 때 시골 어른들이 느꼈을 불편과 당혹감을 떠올려보라.

 

그래서인지 “어느 아파트에 사시느냐”는 질문에 어영부영 말꼬리를 흐리는 어르신들이 흔하다. 하기야 어르신들이 ‘리더스빌’, ‘캐슬프리미어’, ‘타워팰리스’, ‘리버파크’등의 발음을 정확히 해주리라 기대한다면 무리가 아니겠는가.


아파트 이름을 줄줄이 언급한 것은 최근 자신의 회사가 개발한 온라인게임에 모두 한글이름을 지어준 게임인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받은 감동을 전하고 싶어서이다.

 

아직 만나본 적이 없고 기사를 통해서만 알고있는 주인공은 엘엔케이로직코리아 남택원대표이사(39). 그의 회사가 내놓은 작품으로 올해 일본에서 6년 연속 최고게임에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한 ‘붉은 보석’을 필두로 최근 새로 선보인 온라인게임 작품들의 이름도 ‘거울전쟁’ ‘신성부활’ 등 모두 한글이다.


한글 작명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순명쾌했다. 국내외 게임의 경계 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우리나라 수요자들이 주로 외국어로 된 게임을 하다보면 외국문화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담을 수 있는 게임개발이 꼭 필요하며, 우선 이름만이라도 한글을 사용하자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바람의 나라’처럼 멋지고 예쁜 한글이름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두개가 아니라 자신의 회사가 개발하는 작품에 모두 한글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이 회사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한글이름에 대해 이처럼 뚜렷한 철학과 소신을 가진 그는 게임계의 ‘한글 전도사’라고 불릴 만도 하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할 것 같아서 한 일일 뿐” 이라며 겸손한 모습이다. 남 대표에게 전화라도 해 한 마디 권할까 생각중이다. 바르고 고운 우리말에 그만큼 관심과 애정을 보인 바에 회사이름도 아예 한글로 바꿔보라고 말이다.


영어 등 외국어가 갈수록 필요하고 중요한 시대이긴 하지만 지나침은 경계해야 한다. 혼을 뺏길 지경에 이르면 안되기 때문이다. 농민이 주 고객인 농협이 ‘NH’로 간판을 바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어이없는 코미디 아닌가.


온통 외국어 뿐인 국산 자동차 이름을 한글로 붙여보자는 움직임이 한 때 있었으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부르기 편하고 뜻도 좋으면서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는 한글 자동차이름을 짓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온라인게임 역시 그러하지만 남대표의 경우처럼 의지와 철학, 탐구와 연찬이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도 있는 일이리라.

 

한글학회나 국립국어원 등의 누리집을 잘 살펴보고 전문가들의 협력을 얻으면 한글이름 짓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제2, 제3의 남택원이 속속 나타나 올해 한글날 행사 때에는 한글이름 온라인게임이 ‘예쁜 이름 고운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고 기원한다.

 

[김기만 군산대ㆍ우석대 초빙교수 kimkey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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