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 맞아 기억이 새록새록한 그들 이름 … 이제 다시 게임 역사를 쓰겠다

 능소화는 꽃이 피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또 꽂이 만개한 후 시들면 잎을 날리며 떨어지는 꽃들과 달리 능소화는 통 꽃 채로 진다. 그래서 남다른 기품과 조금은 점잖다는 느낌을 안겨 준다. 그 때문일까. 애호가들은 능소화를 절개의 꽂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등라화(藤羅花) 어사화(御賜花) 금등화(金藤花) 등 여러 꽂 이름을 갖고 있는 능소화는 주황의 꽂을 피우며 담장을 따라 자신의 위용을 보여주는데, 만개될 때의 그 모습은 가히 찬연할 정도다. 

더게임스데일리의 상징색은 오렌지색이다. 그러나 사실은 능소화의 주황색을 대입한 것이다. 품격 있고, 곧은 그 꽃의 모습을 닮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사의 색깔이라고 칭하기는 다소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그 꽃의 기품과 절개만을 채색해서 쓰기로 했고 지금도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돌이켜 보면 20개의 성상을 어떻게 쌓아 왔는지 감회가 새롭다. 겉으론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속으론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이 다름 아닌 업계 전문지의 세계다. 그 곳에서 품격을 유지하며 정론을 논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곳 게임업계에서는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산업 전문지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의 업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덤덤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게임계의 역사를 기록하고, 제도권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게임산업의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 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게임산업도 다른 유사 업종이 그랬던 것처럼 한껏 빛을 발하다가 순간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고난의 길을 가려는 더게임스데일리에 안팎으로 도움을 준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지금은 이선에 머물고 있는 김 용환 사장(안다미로)과 방 준혁 의장(넷마블), 카카오를 이끌고 있는 김 범수 창업자와 손 승철 회장, 권 이형 대표(엠게임), 또 위메이드에서 감사로 있는 우 종식 원장(전 한국게임산업진흥원장)과 강 삼석 사장(마상소프트) 등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알만한 게임인들의 관심과 후원의 힘이 컸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더게임스데일리는 바로 서지도, 자리매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필자의 칼럼에서 자주 오르내린 익명의 이니셜인 K형 가운데 한 사람은 김영만이다. 최근 국제e스포츠연맹(IESF) 부회장직에 오른 그는 게임계의 참 일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를 세기적 히트작 반열에 오르도록 한 스타크의 전도사이자, e스포츠의 대중화를 실현한 진정한 게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가 게임과 연을 맺은 건 순전히 일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 게임 장르는 솔직히 매달리고 싶은 분야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일단 맡겨지면 최선을 다하는 그의 스타일 답게 열심히 게임 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리곤 어느날 스타크란 게임을 발견하게 됐고, 미국으로 건너가 보란듯이 블라자드측과 계약을 성사시켰다.

지나간 얘기지만 블리자드측에서는 김 영만의 제안에 대해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는 블리자드측과 계약에 앞서 멋진 배틀넷 서비스를 구현해서 전례없는 대박을 쳐 보겠노라고 자신했다고 한다. 얼마 후 블리자드측에 한국 소식이 들려왔다. 스타크가 한국서 대박이 났다는 것이다. 이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e스포츠 대회에서는 무려 1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는 게임계에 관한한 헌신적인 인물이다. 게임산업협회장직을 두차례 역임했고, e스포츠협회장직도 창립 회장에 이어 중도하차한 협회장 부재로 회장직을 수행했다. 지금까지 무려 네차례다. 게임문화 확산을 위해 그는 사재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그가 매각한 한빛소프트를 통해 상당한 재력을 쌓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산업계 인프라와 게임문화 확산을 위해 출연했다. 그러면서도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둬 왔다. 주변에선 그가 정계에 입문했으면 국회의원을 몇번은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1~2년 사이에 게임계가 어렵다 하니까 더 생각나는 지우다.

또 한사람의 이니셜 주인공은 이 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다. 그는 최근 22대 총선에 뛰어들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너무 총명해서 조금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만나 대화해 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의 첫 인상을 소개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여년 전의 일이다. IT 게임업계에서 잘 나간다는 그와 조우하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는 만날 때마다 생산적인 제안을 해 왔고, 건설적인 방안으로 업계를 선도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특히 그와는 전문지의 논조와 위치 선정을 놓고 공방을 벌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한번도 일방통행식 주장은 없었다.

2009년 쯤의 일로 기억된다. 그가 매년 열리는 국제 게임전시회를 부산으로 옮겨 개최키로 하자 큰 논란이 빚어졌다. 일부 회원사들은 왜 하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옮기려 하는 것이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당시 게임산업협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그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회원사를 설득하고 나섰다. 우선 전시회를 부산에서 열게 되면 침체된 부산경제 살리기에 보탬을 줄 수 있어 게임 전시회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과 앞서 열리는 부산 국제 영화제와의 바람과 함께 전시회의 시너지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그는 부산 대회 개최를 관철시켰다.

스타트 벤처에 대한 눈도 남달랐다. 그는 스타트 벤처를 산업의 잔디로 여기고 잔디가 잘 자라야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상생 논리를 주장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입신 배경이 된 엔씨소프트를 떠나기 무섭게 스타트 벤처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런 그가 지금 정치권으로의 진입을 타진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머물러 온 자리는 늘 따뜻했고, 건설적인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더게임스데일리가 힘겨운 성상을 들어 올리기 위해 또다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따뜻한 봄날 못지 않게 바람 불고 서리가 내리는 순간들 또한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단 한가지, 독자만을 바라보며 달려 나가는 더게임스데일리가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능소화처럼 품격과 정론을 놓치지 않고 기품있게 헤쳐 나가는, 바른 언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하겠다. 

[본지 발행인 겸 뉴스 1 에디터 inmo@tgdaily.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