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게임스데일리와 함께한 20년의 하이라이트] ① 인물/기업

국내 게임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제도권의 큰 도움없이 자생적으로 뿌리를 내렸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성장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뛰어난 인재들이 초기 시장에 진입해  산업을 주도한 힘이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그마한 벤처로 시작한 이들의 노력은 현재 조 단위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들로 자리매김했고, 국내 게임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게임스데일리 20년 역사를 통해 당시 현장에서 활동한 인물과 기업 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넥슨 창업자 故 김정주 전 NXC 회장

2005년 6월 김 정주 전 NXC 회장은 넥슨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서원일 대표가 창업을 위해 회사를 떠나면서 결정된 것이다. 1994년 12월 넥슨을 창업한 그는 그간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게임 개발과 경영을 주도해 왔다. 이후 회사 창립 약 11년 만에 경영 전면으로 나선 것이다.

넥슨은 ‘바람의나라’를 시작으로 ‘크레이지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여러 화제작들을 출시하며 게임시장을 주도해 왔다. 이들 작품은 지금도 인기 판권(IP)으로 분류되고 있다. 모바일 부문에서 다소 존재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2020년부터는 온라인은 물론 모바일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역량으로 넥슨의 기업가치는 치솟았다. 일본에 상장한 넥슨만 놓고봐도 약 20조원에 육박한다.

당시 업계에서는 창업자가 경영일선에 나섬에 따라 회사가 보다 안정적인 조직체제를 갖추게 될 것으로 봤다. 김 정주 대표는 이후 1년 4개월만인 2006년 10월 지주회사 NXC(당시 넥슨홀딩스) 대표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NXC 대표 시절 그는 한국판 디즈니를 꿈꾸며 게임 외에도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스터디를 하게 된다.

그는 한 때 넥슨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2021년 7월 돌연 대표직을 사임하게 된다. 대표직 사임 이후 사내이사직을 유지하며 창업초기처럼 뒤에서 경영 조율에 힘을 보탰다. 그런 그가  2022년 2월 미국 하와이에서 갑작스런 타계 소식을 알려왔다. 평생을 즐겁고 유쾌한 게임 만들기와 소외 아동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온 그가 유명을 달리하자 많은 게임인들이 그를 추모하는 등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창업 이후 대표직 지속

김 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게임업계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997년 3월 회사 창립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게임 현장에서 벗어난 일이 없을만큼 게임계에 애정을 보여왔다. 그의 이같은 태도는 같은 세대로서 함께 길을 걸어온 경쟁사 게임인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엔씨소프트는 회사 창립 이후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등 하드코어 MMORPG로 선두 자리를 고수 해 왔다.  경쟁사인 넥슨이 청소년 층이 즐길 수 있는 다소 소프트한 게임들로 시장을 공략해 왔다면, 엔씨소프트는 성인 유저층을 타깃으로 시장을 확대해 왔다. 모바일 시장에서도 2017년 6월 ‘리니지M’을 필두로 모바일 ‘리니지’ 형제들을 론칭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게임개발 뿐 아니라 경영 성적도 긍정적이었다.  2004년 매출 2468억원에서 2023년 매출 1조 7798억원 대에 이르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2022년 2조 5718억원에서 조금 줄어든 수치이긴 하지만, 기업 시가총액 역시 2004년 10월 2조 1639억원에서 2020년 20조 돌파를 완성했다. 김 대표 자체가 엔씨의 얼굴이자 상징으로 보여져 왔다. 특히 그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부서의 요청이 들어오면 기꺼히 이에 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대표의 광고 등장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다.

김 대표는 프로 야구팀 NC 다이노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크다.  다이노스의 팀 순위가 지난해 요동을 치듯 엔씨소프트의 위상도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다. 기업가치의 향배를 가르는 매출 실적이 부진한 때문인데, 업계에선 전열만 제대로 가다듬으면 다시 예전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공동대표 체제란 충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용퇴 문제도 강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인 것이다. 

2024년 엔씨소프트는 새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의 새로운 경영 계획이 어떻게 구체화 될지 주목되고 있다. 2010년 한국한림공학원 대한민국 100대 기술과 주역, 2003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기술경영인상 최고경영자사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로벌 퍼블리셔 넷마블 만든 방준혁 이사회 의장

방 준혁 넷마블·코웨이 의장은 게임산업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지만 그는 2000년 넷마블을 설립하면서 게임업계 시가총액 2위(2월 23일 기준 5조 4151억원)를 기록하는 명문가의 기업 총수로 뛰어 올랐다.

회사 설립 후 2003년까지 대표직을 유지해 온 그가  2004년 회사를 갑자기 CJ 그룹에 매각했다. 그는 이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 등 말을 아꼈다. 단지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업계에선 그가 격무로 건강을 해쳤기 때문이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현업을 떠나 있어선 안되는 인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CJ 인터넷 사업전략담당 사장으로 컴백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CJ ENM 게임사업부문 총괄 상임고문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2014년 CJ 그룹에서 계열 분리를 통해 넷마블(당시 넷마블게임즈)을 다시 인수했다. 때 마침 내수 시장이 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자 전격적으로 모바일게임 사업에만 주력하겠다고 선언,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엔씨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얻어낸 리니지 판권을 활용, 리니지 모바일을 선보여 대박을 이끌기도 했다.

'하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소신을 가지고 경영에 몰두 해 온 그는 2020년 2월 또다시 업계를 놀라게 하는 결정을 단행한다. 이른바 굴뚝 산업계에 알짜 배기 기업인 웅진코웨이(현재 넷마블 코웨이)를 인수키로 한 것이다. 

메이저 게임업체 가운데 글로벌시장 개척에 가장 열성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 넷마블의 경영을 조율하는 그는 또한번의 점프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만 알려진 게임업체가 아니라 글로벌 모바일 퍼블리셔로서 넷마블이 자리매김하고 그렇게 불렸으면 하는 바람을 그는 자주 피력하고 있다.

게임업계 대표 부호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그룹 창업자

권 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최고비전 책임자(CVO)는 업계에서는 은둔형 창업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업계 행사에도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스갯 소리로 대통령 보다 더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여러 설들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얘기는 내성적인 그의 성격 탓으로 보는 게 가장 타당하다 하겠다.

요란함보다는 다소곳함을 지향하고, 동적이기 보다는 정적인 모습의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것이 그의 경영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외신을 통해 접하는 그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면 깜짝 놀라게 하는 뉴스들이 적지 않다. 

그가 스마일게이트를 설립한 것은 지난 2002년 6월이다. 이 회사의 거대한 성장 발판이 마련된 '크로스파이어'가 그 때 잉태됐다. 그리고 2007년 비로소 작품이 출시됐다. 그러나 기대했던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더 정확한 표현을 빌자면 참패했다고 하는 게 맞다. 그러자 그는 과감히 중국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당시 중국 게임시장은 글로벌 작 '카운트스트라이크'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고사양으로 저사양의 PC로는 즐길 수 없었다.  

그는 당시 무명의 중국 기업에 불과한 텐센트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저사양에 맞는 ‘크로스파이어’를 선보이기로 하고 현지화에 매진했다. 이같은 계획은 놀라울 정도로 맞아 떨어졌다. 가히 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지금도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올드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권 혁빈이 아니었으면 중국 판 ‘크로스파이어’는 없었다고 할만큼 그는 현지화에 열정을 기울인 것이다. 

그는 국내 흥행작이 없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잇달아 흥행작을 발표했다.  ‘에픽 세븐’ ‘로스트 아크’ 등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회사 설립 후 2014년까지 대표직을 유지해 온 그는 2017년 이후부터는 현업에서 물러나 이선에서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회사 경영체제 변화가 이뤄짐에 따라 비전제시최고책임자(CVO)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는 2020년 게임업계 최초로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무역의 날 수출의 탑,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해외진출유공부문 대통령상에 이어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블록체인 게임 선두업체 위메이드의 창업자 박관호 의장

박 관호 위메이드 의장은 개발자 출신의 경영인이다. 조용한 성품이지만 호불호가 분명한 스타일이다. 자신에 대해 일각에서 은둔형이라고 지칭하는 데 대해 굳이 그렇지 않다고 하진 않겠지만, 자신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꼭 하고자 하는 말만 하고, 드러내고 싶은 것이 있을 경우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언급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더 말을 아끼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따라 다니는 상징적 표현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인지 회사 경영 전반에 관한 입장 표명은 대부분 장현국 대표가 맡아 수행한다. 그는 그러나 회사 경영 실적과 책임 소재 유무에 대해서는 모두 자신이 떠안을 만큼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위메이드는 지난 2000년 2월 설립됐다.  ‘미르의 전설’ 시리즈로 가히 한 때를 풍미했다. 그러나 이같은 유명세로 액토즈소프트와 라이선스 분쟁을 빚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이 문제를 마무리하면서 액토즈소프트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갖게 됐다.

위메이드는 좋은 작품이 있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소문나 있다. 위험 부담이 있지만 믿을 수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끝까지 믿고 투자한다. 그게 바로 박 의장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상당수 스타트 업들이 위메이드를 통해 투자자금을 조달했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 의장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하지만 그는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기업들의 선순환 구조가 무너져선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위메이드는 2021년부터 블록체인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가야 할 길이라면 매를 맞아서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그해 8월 글로벌 출시된 ‘미르의전설 4’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국내 게임업체들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 의장은 200년 2월 회사를 설립한 이후 줄곧 대표직을 맡아 왔다. 2012년 대표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현국 대표에게 전권을 맡겨 경영을 전담하다 시피 하고 있다. 

이들 외에 게임산업계에는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이들 모두 열정을 가지고 게임산업을 다듬고 가꾸고 있다. 이들이 존재하고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한국 게임산업이 끔틀대고 비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쥐는 스타 경영인들이 계속 배출될 게 분명하다 하겠다.

[더게임스데일리 강인석 기자 kang12@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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