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게임하는 것도 너무 귀찮네요. 해야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없으니 게임을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게임도 누가 대신해 줬으면 좋겠네요."

최근 업계 한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에는 게임을 너무 사랑해서 게임업계에 뛰어들었고 굉장히 행복했지만, 점차 몸이 피곤하고 시간이 부족하니 게임을 하는 것조차 너무 지치고 힘들다는 하소연 이었다. 특히 게임이라는 취미가 업무로 변하며 그의 피곤함은 더욱 가중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특별히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자 역시 대화 내용 자체는 굉장히 공감했다. 오랜 사냥과 파밍 시간이 곧 캐릭터의 성장과 직결되는 멀티 플레이 MMORPG는 더 이상 엄두가 나지 않는다. FPS 장르의 게임은 제대로 한 게임을 하고 나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최근에는 싱글 플레이어 게임 또는 경쟁 요소가 없는 게임에 눈길이 간다.

취재를 하며 만난 또래의 많은 직장인들이 '게임 피로증'을 호소하고 있다. 현실의 일조차 바쁜 와중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는 게임 세계로 출근해 일을 해야 한다. 일일 퀘스트와 주간 퀘스트는 업무의 연장선이 돼 버렸다.

이른바 '에코붐' 세대(1991년~1996년)는 한국 게임산업의 성숙기를 주도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에 이른바 '초글링'이라고 불리며 PC방 문화를 이끌었고 포털 사이트의 발전과 함께 게임 커뮤니티를 활성화했다. 게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대였지만, 이제 30대의 나이로 직장과 가정을 가지며 게임과 거리가 생기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게임 이용률은 62.9%였다. 전년 대비 11.5% 감소한 수치이며 지난 2019년부터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후 5년 만에 첫 감소세다. 코로나 팬더믹이 종식되며 게임 이용률이 다소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지난 2019년 게임 이용률인 65.7%보다도 낮은 이용률을 기록했다.

플레이 타임이 긴 MMORPG의 플레이 비율 역시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데이터분석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 RPG 장르 기준 MMORPG의 플레이 비중은 69.5%로 전년 대비 8% 이상 감소했다. 최근 5개년 사이 MMORPG의 비중이 70% 이하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에코붐 세대의 게임 피로증으로 인해 최근 많은 시간이 들지 않는 방치형 및 수집형 RPG, 하이퍼 캐주얼 게임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데이터분석업체 아이지에이웍스는 지난해 수집형 RPG와 하이퍼 캐주얼 게임의 MAU가 전체 장르 중 2위와 3위를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한 방치형 장르의 플레이어 수도 이전 대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넷마블의 '세븐나이츠 키우기'는 최근 게임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한국 굴지의 대형 게임업체가 흥행 IP를 연계해 방치형 장르에 뛰어들었고, 구글 플레이 매출 3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매출 성적을 거뒀다. 이를 지켜본 게임업체들이 규모를 가리지 않고 방치형 게임 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이야기다.

플레이 타임이 짧은 게임 장르가 두각을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전만큼 게임이 즐겁지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모험과 색다른 게임성에 가슴이 뛰는 경험을 맞이하고 싶다. 에코붐 세대가 '게임 피로증'이 아닌 '게임 불감증'에 걸리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더게임스데일리 이상민 기자 dltkdals@tgdaily.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