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 농사 게임에 주부·MZ세대 몰려…유행 확산 여부는 제도권의 인식변화에 달려

“게임으로 키운 채소가 집으로 배송된다고?” 필자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믿기 힘들 일이 최근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내는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짬을 내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게임을 즐기듯이 사이버 농장에서 대파 등 각종 식물을 키웠다. 그런데 어느날 집앞에 낯선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작은 박스 안을 열어보니 싱싱한 대파가 가지런히 포장돼 있는 것이다. 

요즘 주부들은 물론이고 MZ세대들 사이에서 농사짓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에 가상 공간에서 작물 재배 등 사이버 농사를 즐길 수 있는 ‘팜(Farm) 게임’이 있다.

팜 게임 열풍의 시작은 ‘앱테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농산물 가격 급등 등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앱테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앱테크란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다. 사용자가 게임, 퀴즈 등에 참여해 광고 시청 등 특정행위를 하면 대가로 현금성 포인트(보상)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최근엔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의 구성적인 요소를 적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사용자의 앱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플랫폼마다 제공하는 서비스·상품에 맞춰 특색있는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그중 앱으로 작물을 재배해 실제 배송까지 받아볼 수 있는 팜 게임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커머스 플랫폼인 올웨이즈의 '올팜'은 앱 사용자가 대파·쌀·마늘·고구마 등 작물을 골라서 재배하면 실제 해당 작물을 배송받을 수 있는 일종의 농사 게임이다. 출석 체크, 친구 초대, 미니 게임, 상품 구경, 물주기 배틀 등으로 성장에 필요한 물과 비료를 얻을 수 있다. 올팜에서 작물을 수확하기까지 일반적으로 1~2개월 정도 걸린다.

올웨이즈는 올팜의 인기에 힘입어 2021년 출시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입자 수가 700만 명, 월간 활성 사용자 수 250만 명을 넘어섰다. 올팜의 등장으로 재테크하듯이 파를 재배해 식비를 아낀다는 의미의 '파테크'라는 단어까지 유행하고 있다. 특히 올팜의 인기에 자극받은 마켓컬리 등 경쟁업체들도 속속 유사한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때아닌 팜 게임 붐이 일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커머스 플랫폼들이 주도하는 팜 게임 유행에 게임업체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례로 셈스게임즈는 가상세계의 농지를 관리하면 실제 식물을 재배하는 메타버스 게임 '헬로, 팜' 출시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헬로, 팜!'은 메타버스 농지를 소유하고 반려식물을 키우는 게임이다. 또 현실의 사물인터넷(IoT) 로봇과 연동을 통해 실제 식물을 재배하는 서비스를 지원한다. 게임 내 '팜테라'에 침입한 오염 몬스터를 물리쳐 행성을 정화하고,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플레이가 기반이 된다. 이를 통해 획득한 청정수를 메타버스인 '메타팜'을 통해 지구로 보내지고 이렇게 키운 식물을 현실의 보상으로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 업체는 현재 내년 5월 출시를 목표로 펀딩에 나선 상태다.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는 약 한 달 간 앱을 통해 원격으로 식물을 키우고, 이를 필요로 하는 단체에 기부하거나 집으로 배송 받을 수 있게끔 한다는 계획이다. 

팜 게임의 인기 요인은 기존 상업용 게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보상과 재미가 명확하고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게임은 흥행에 성공할 수 밖에 없다. 대파와 같은 작물을 키우는 것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파테크 개념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그 인기는 금새 시들어졌을 것이 뻔하다. 적절한 보상은 게임의 재미를 더 해주는 요소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커머스 플랫폼들은 한결 자유롭게 게임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듯 하다. 좋게 표현해서 보상이지 이를 달리 보면 사행성으로 볼 수도 있어서 하는 얘기다.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은 게임의 사행성 조장을 막기 위해 경품 등을 제공해 사행성을 조장하지 아니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파테크를 사행성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법령 해석은 없다. 문제는 제도권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다. 

얼마전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유통 플랫폼 사이에서 게임에 참여하면 식료품, 생필품 등을 경품으로 주는 '보상형 미니게임'을 규제하고 나섰다. 게임위는 최근 올팜처럼 보상형 미니게임을 서비스하는 국내외 업체에 시정요청 공문을 보내 등급 분류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게임위는 게임산업법 28조항을 근거로, 현물 경품 제공 게임에는 등급 분류를 내주지 않고 있다. 게임 이용 대가로 가상화폐나 대체불가토큰(NFT)을 지급하는 블록체인 게임도 해당 조항 때문에 국내 서비스가 불가능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에 게임을 접목해 이용자 참여를 유도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참여에 따른 소소한 경품 지급까지 규제하면 누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임위가 사행성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 해석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농사 게임과 반려 식물의 유행 소식은 개인적으로 매우 신선했으며, 게임의 긍정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아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흐름을 게임업체들이 주도하지 못했고 현행 법제도상 주도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새해에는 게임산업을 옥죄고 있는 여럿 규제들이 해소돼 메타버스와 IoT, NFT 등 첨단 기술을 접목시킨 다양한 팜 게임과 블록체인 게임 등이 출시돼 지금의 MMORPG와 서브컬처로 양분돼 있는 게임 시장을 좀 더 풍요롭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게임스데일리 김종윤 뉴스2 에디터 jykim@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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