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동색이라는 데 문제 제기…체면 구길까 싶어 억지로 배척하는 게 아닌지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대중적인 테너로 불리운 박 인수 전 서울대 교수가 최근 타계했다. 시인 정 지용의 시에다 작곡가 김 희갑 씨가 곡을 붙인 ‘향수’를 가수 이 동원과 함께 불러 일약 국민 가요로 만들어 낸 박 인수는 오페라 가수라고 불리울 만큼 오페라 무대에 자주 섰다. 그가 생전에 오페라 무대에 선 횟수가 무려 300회를 넘는다고 하니 가히 오페라의 거성이라 불릴 만 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 왔는데, 그의 이같은 노력은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겠다는 자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박 인수는 ‘향수’를 부르고 난 이후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정작 친정집 격인 클래식 음악계로부터는 배척(?)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대중적인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대중음악 무대에선 클래식 음악을, 클래식 음악 무대에선 대중음악을 선사했다.

지금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간극을 오가는 ‘클로스 오버’란 장르를 그렇게 낯설 게 보진 않지만, 1980~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를 아주 파격적인 것으로 봤다. 특히 클래식 음악계에선 천박한 시도라며 이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졌다. 그러나 박 인수는 개의치 않았다.

클래식이란 음악 장르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한편 대중 음악이란 것이 그렇게 가볍기 때문에 예술적이지 않다는 이유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유명을 달리한 그의 음악세계를 굳이 지금 다시 되돌아보는 이유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예술의 높고 낮음을 구분하면서 노래하지 않았던 그의 삶을 다시 살펴보고자 함 때문이다.

올들어 게임을 비롯한 IT 업계의 최대 화두는 메타버스(metaverse)다. 아주 낯설다 할 만큼 생경한 이 단어가 요즘엔 식상한 메뉴처럼 선도가 크게 떨어져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메타버스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혁신안을 곧 마련하겠다고 발표하자 산업계의 이목이 또다시 집중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신세계를 보여주는 플랫폼이다. 닐 스티븐슨 (Neal Stepherson)의 공상 과학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란 작품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메타버스란 용어는 ‘온 오프라인’을 뛰어넘어 또 다른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같은 세계를 구현하게 되면 ‘온 오프라인’을 완벽히 구분하는, 사실상 또다른 가상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예컨대 여기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면면을 갖춰야 하며, 필요에 따라 정치적 활동도 가능하다. 이렇게 될 경우 개인은 오프라인 세계와 또다른 5차원의 세계를 하나 더 갖게 되고, 나아가 정부도 이곳에 적을 두고 이들 구성원을 관리 하게 될 지 이 또한 모를 일이다.

당장 이 정도까지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여러 제반 인프라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 전이의 속도가 워낙 빠르고 이같은 움직임이 한층 더 탄력을 받는다면 앞서 언급한 가상의 세계 구현은 그렇게 지루하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겠다.

문제는 이같은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데 있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식의 구태와 같은 구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메타버스라는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걸맞은 이들만 받아들이겠다는 식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메타버스 세계와 가장 근접해 있는 게임은 제외 하겠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세계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 툴은 대부분 게임에서 운용하는 장치와 거의 같다. 따라서 이같은 툴과 개발 경험은 게임계가 가장 앞서 있다. 솔직히 여기에다 현실 세계를 반영해서 플랫폼을 만들면 그만이다. 그 작업이 어렵지만 그 과정은 그렇다. 그런데 그런 게임은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게임계에 걸어 둔 아주 많은 규제들을 뛰어넘어 메타버스 세계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란 것이 주된 이유로 알려지고 있다. 규제의 울타리를 뛰어 넘다가 지쳐 버릴 수 있다는 배려 차원의 설명도 부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내를 자세히 살펴보면 게임계를 하대하고 있는 데서 나온 그들만의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IT업계는 항시 게임계에 대해 거리에 두는 수를 써 왔다. 이를테면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면서도 동상이몽(同牀異夢)의 꿈을 꿔 온 것이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신들과 우리는 결이 다르다는, 다소 이해 할 수 없는 특권 의식이 깔려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게임만 꼭 집어 제외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메타버스 산업 육성을 위한 과제들을 살펴보면 엄청나다. 당장 게임규제 적용 여부, 대체 불가토큰(NET)의 가상자산 인정 여부 등 법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는 식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거성 박 인수는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향수’란 노래도, 한국에서 ‘클로스 오버’ 란 장르의 뿌리도 내리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이를 테면 내려 놔야 역사는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직화는 쉬어도 컨버전스(Convergence:통합)는 어렵다 하지 않던가.

언필칭, 문화와 산업은 문을 열어놔야 풍요로워 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부와 산업계, 문화계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혹시 지금도 게임이 저급하다고 생각하는가. 상당히 고루한 이들의 발상일 뿐이다. 

[본지 발행인 겸 뉴스 1에디터 inmo@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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