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주 넥슨 창업자가 지난 달 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고작 54세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선 전산학을 공부했지만, 그렇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벤처기업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대기업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및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같은 일들이 그에게 유익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 송 재경이란 재간꾼 선배가 옆에서 그의 새로운  출발을 재촉했다.

그가 넥슨이란 게임 회사를 창업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송 재경과 김 상범, 박정협 등 몇몇 뜻맞는 동기, 후배들을 끌어들여 게임 개발에 나섰다. 당시 '머드 게임'이 주류였던 인터넷 게임에 그래픽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2년여의 각고 끝에 선보인 작품이 바로 '바람의 나라'다. 

이 작품은 온라인게임의 표석이자 대한민국 게임의 역사를 새롭게 장식한 대표작이 됐다. 당시 시장 반응은 가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마케팅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바람의 나라'는 금세 인기작으로 자리매김 했고, 이를 진두지휘한  김 정주는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됐다. 

그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마치 블도저처럼 게임업계의 밭을 갈고 갈아 엎었다. 그가 지나간 길은 밭 고랑이 만들어졌고, 그가 심어놓은 유실수 나무들은 주렁주렁 열매를 맺었다.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마기노키' '퀴즈퀴즈' 등이 대표작이다. 또 그가 아웃 소싱해 온 '던전 앤 파이터' '서든어택' 등은 국내를 넘나드는 대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가히 십수년을 게임업계를 평정했다.   

이처럼 무섭게 달려온 그에게도 슬럼프 기간이 있었다. 좋지않은 구설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그가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뇌물죄에도 연루됐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지만, 그의 삶에 있어 치명적 수모이자 수치라고 생각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부분유료화라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게임계의 수익모델을 만들어 냈고, 확률형 아이템이란 기상천외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게임계가 적용토록 했으나 이에 대한 제도권의 평가는 두쪽으로 갈리며 그를 괴롭혔다.

그가 현업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선 결정적 배경이 됐다. 그는 이후 사회 봉사와 산업계의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는 등 게임업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며 생활해 왔다.  그리곤 지난 1일 그의 비보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에 대해 게임업계에선 '운둔의 경영자' ' 괴짜 인사' 란 여러 수식어가 달려 다닌다.  어찌보면 그의 족적이 그만큼 넓고 깊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 예술적 기질이 뛰어나 항상 예술계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기도 한 그였다. 

그런 그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오래도록 지켜 본 경쟁사의 대표이자 절친 선배인 김 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를 보내면서 이같은 생각을 해 봤다. 그의 마지막 소망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누이 이같은 얘기를 했다.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 또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게임업계가 세계 최고의 게임강국이 됐으면 한다." 

김 정주,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유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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