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 업종 가운데 유일하게 '표류'…고액 연봉보다 훨 나은 '상징성' 을 놓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 때문인지 5월에는 유독 기념일이 많다. 5일 어린이 날에 이어 8일은 어버이 날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며, 19일은 음력 사월 초파일인 부처님 오신 날이다. 기념 공휴일 외에도 근로자의 날(1일)과 동학농민혁명기념일(11일), 성년의 날(17일)이 있고 18일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빠지면 서운할 듯한 바다의 날(31일)도 있다.

기념일을 굳이 지정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통해 새로운 뜻과 좌표를 세워 보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요즘엔 공유일이기 때문에 기념일을 기억하는 정도의 요식행위적 개념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에따라 연례 행사처럼 다소 맥빠지게 치러지는 기념일 행사 역시 적지 않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그래서 일까. 마치 이같은 기념일이 있기나 했나 할 만큼 다소 생뚱맞은 기념일 또한 없지 않다. 오죽하면 그렇게 해서 기억하도록 하거나,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 일까. 그 까닭인지 너도 나도 기념일을 만들고, 조각에 나선다.

산업계와 기업체, 개개인들도 이 범주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년 내내 기념일을 보내며 지내는 것 아니냐는 웃지못할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 있는 게 훨씬 낫다.

‘게임의 날’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게임의 날 지정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한 바 있다. 결론은 푸대접이자 무대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아이콘이자 핵심인 게임산업을 이처럼 푸대접하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게임은 산업전선에서 지대한 역할을 해 왔다. 수출시장에서 적지않은 공을 쌓아 왔고, 상대적으로 문화 할인율이 높은 특성을 앞세워 한국 대중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해 왔다. 또 국내 엔터테인먼트 내수 시장 규모를 늘리는데도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게임계에 대한 평가는 이도저도 아닌 것이다. 산업에 대한 애정은 커녕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업계의 화두로 떠오르면 그저 덮으려고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취월장, 치솟는 나무의 키를 자신들 맘대로 감출 수 있단 말인가.

고작 끄집어든 것이 게임계를 정보통신(IT)분야로 편입해 쓰도록 하는, 게임계를 조금은 봐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곤 있으나,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며 어느 누가 봐도 낯 뜨거운 짓이다. 가장 대중적이며 팬들로 부터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템을 사회 시선이 다소 껄끄럽다는 이유로 그렇게 달리 포장하려 하는 것은 산업에 대한 애정도, 게임인에 대한 예우도 아닌 것이다.

다가오는 10월 27일은 ‘영화의 날’이다. 1919년 10월 27일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김도산의 작품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상영된 날을 기념해 1963년 영화인협회에서 이를 ‘영화의 날’로 제정한 것이다. 법정 기념일은 아니지만 영화인들은 매년 이날을 맞아 각종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산업계와 이웃한 경쟁매체 만화(애니메이션)업계도 11월3일을 ‘만화의 날’로 지정해 놓고 있다. 11월 3일은 만화에 대한 심의 철폐를 주장하며, 1996년 만화업계가 결의 대회를 개최한 날이다. 만화업계는 이날 결의 대회를 통해 만화는 유해 매체라는 꼬리표를 떼어 냄으로써 사실상 거듭나게 됐고, 업계는 이날을 기념해 만화의 날로 제정, 각종 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게임의 날’ 제정을 서둘러야겠다는 것이다. 누구의 힘을 빌어서도 아니고, 누구의 압박에 의해서도 아니다. 게임인의 자존과 자긍심을 위해, 그리고 게임계의 보장된 내일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업종 생일 등 기념일에 대한 족보 지정은 정부 승인 없이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절차적인 것을 먼저 밟아야 한다. 게임계에 대한 대내외적인 상징성과 의미를 찾아보고, 자존감을 꾀할 수 있는 날을 살펴봐야 한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선 국내 게임 역사에 대해 PC게임 태동이전인 아케이드 게임 역사까지 다뤄져야 한다는 관점아래 ‘게임의 날’ 지정 여부 역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개발자 중심의 업계 관계자들은 온라인게임의 태동과 시장 출발선을 놓고 기념일을 고르는 게 상대적으로 용이한 일이라며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의 서비스 출발선인 1996년 4월 5일과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본격 상용화 시기인 1998년 9월1일을 기념해 4월 5일 또는 9월1일을 ‘게임의 날’로 제정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당사자인 엔씨소프트와 넥슨 측이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선 아예 업계의 관점에서 벗어나 제3의 날을 선택해 ‘게임의 날’로 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예컨대 업계의 상징성 있는 인물 또는 선언적 의미가 큰 날을 선택해 그날을 ‘게임의 날’로 지정하자는 것이다.

기념일은 말 그대로 기념일 뿐이다. 그러나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백 번, 천 번 낫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계의 기념일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큰 의미가 있다. 예컨대 직원들에 대한 고액의 연봉 지급 따위와는 비교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애정이 있으면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높아간다.

산업 인프라도 갖추지 못한 곳에서 게임계가 풍요로운 동산을 만들고 꽃의 향기를 피웠다는 것 만으로도 대박이자 기적이다. 이젠 업계의 자존감도, 그에 상응하는 품격도 중요하다. 이건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날’ 제정이 업계의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본지 발행인 겸 뉴스1 에디터 inmo@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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