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정확한 평가와 진단기준 필요…게임질병코드 도입 신중히 대처해야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9년 5월 총회에서 게임이 정신, 신체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며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전격 결의했다.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정신의학계에서도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총회에서는 이 안건이 신속히 가결되고 말았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의학계가 새로운 영역으로 그들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란 분석도 나오는 가 하면 일부 국가의 눈치를 보았다는 등 파장이 적지 않았다.  

이를 통해 게임은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과 같은 질병으로 취급을 받게 됐다. 아직 우리 정부가 이 질병코드 도입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 게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더욱 부정적으로 굳어지게 됐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을 마치 병원균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용의자가 무슨무슨 게임(일인칭슈팅:FPS)에 빠져 있었다며 게임을 연관지으려 하는 모습이 반복돼 왔다. 하지만 의학계는 FPS 게임과 총기난사범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왔다. 

이를 놓고 게임계에선 자동차와 칼을 사용하는 사례를 들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곤 한다. 자동차와 칼은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이롭게도 하기도, 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의학계에선 자동차와 칼에 대해 질병코드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게임에 대해서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또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인 영화의 경우 살인과 전쟁, 섹스 등 부정적인 소재를 다룬 것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를 놓고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의학자는 없다. 어째서 의학자들은 이렇듯 게임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이고 결사적인가.  

필자는 이러한 의학계의 부정적 인식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양 의학은 눈으로 보이는 것에 기준을 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본은 신체적인 질병을 파악하고 치료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용하다.

하지만 게임과 같은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는 부적합하다. 게임은 감기나 암처럼 눈에 보이는 질병의 원인이 없다. 그렇다 보니 근거도 없는 억지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게임을 플레이한다 해도 누군가는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한편 누군가는 그 게임에 몰입해 많은 시간과 돈을 지출한다. 그렇다면 그 게임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게임을 즐기는 유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정신의학계의 많은 관계자들이 게임 그 자체보다는 그 게임에 의존하고 과몰입하는 유저의 환경에 주목하고 있다. 쇠외되거나 상처받은 정신상태 속에서 게임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 그 차체보다는 유저의 정신적 환경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마치 게임이 원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인식개선을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최근 영국에서 게임이 정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평소 ‘모여봐요 동물의 숲’과 ‘플랜트 대 좀비’를 즐겨하는 약 3000명의 게임 이용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 결과 게임 이용 시간이 증가할수록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신 건강 상태가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정확한 원인은 밝히지 못했지만, 게임에 대한 욕구 충족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다만, 이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치료 관점에서 유의할 정도로 큰지 역시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반대로 게임이 신체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러가지 연구결과를 지켜보면 아직도 게임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정부에서도 게임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정확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의학계에 연구를 의뢰했지만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의학계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문제를 놓고 관련 부처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WHO가 게임 질병코드를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용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서둘러서도 안되고 너무 쉽게 단순화해서도 안될 것이다. 성급하게 판단하기 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양한 연구를 통해 게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더게임스데일리 김병억 편집담당 이사  bekim@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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