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아이템으로 새롭게 각광 … 대국민 인식 바꿀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필자가 어렸을 적, 하루는 아버지께서 뜬금없이 만화책 대여섯 권을 갖고 집에 돌아오셨다. 만화삼국지, 80일간의 세계일주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들이었다. 만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계시던 분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것이었을까. 알아보니, 동네 책방 주인이 아버지와 얘기 나누다가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드리고 싶다며 나름 재미있으면서도 건전한 만화책 몇 권을 골라 그냥 주셨다는 것이다. 숨어서 몰래 만화를 보던 나는 그렇게 ’떳떳하게‘ 몇 종류의 만화책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께서 그 이후 다시 만화책을 가져오시는 일은 없었고 집에서 만화는 다시 금기시됐지만 요즘까지도 즐겨 보는 작가의 만화를 기다리고 또 찾아서 보는 나를 보면 책방 주인의 노력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나 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는 급격한 변혁을 겪고 있다. 비대면이 불가피하게 일상화 되면서 오락, 교육, 문화 등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던 모든 시스템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거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 중이다. 초기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무렵, 온라인이라는 세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선택 가능한 기능’ ‘잘 활용하면 유용한 기능’으로서 존재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기반 사회적 시스템이 급격히 강제적으로 제한을 받게 된 시점에서 온라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 많은 업종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오히려 무한한 성장 기회를 얻게 된 업종들도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온라인 판매업종, 배달업종 등이겠지만 재택 시간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집에서 가능한 문화활동과 연계된 업종도 큰 수혜자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웹툰이나 게임업종 등이다. 

하지만 기회를 극대화하려고 하는 넷플릭스 등의 공격적인 행보에 비해 게임업계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어찌 보면 오랜기간 게임의 폐해에 대해 지속적인 공격을 받아내야 했던 입장에서, 업계를 대표하는 업체 혹은 협회 등은 나서지 않는 게 오히려 더 공격의 화살을 피할 수 있고 내실을 다지는 기반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게임의 순기능과 긍정적인 활용방안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바로 이때, 그러한 시도가 기대만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게임에 대한 편견과 굴레의 실상을 밝히고 무한한 활용 가능성과 급격히 커져갈 글로벌 게임시장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설파할 게임 관련 협회나 단체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막대한 희생을 감내해준 의료진들을 위한 ‘덕분에 캠페인’이 큰 호응을 얻었다. 우리를 대신해 미지의 질병과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들에게 수많은 이들이 해시태그를 붙이며 수화 동작을 보냈고 딱히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들에게 조차도 의료진들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코로나19의 재 확산이 발발하고, 그런 와중에 의대 정원 확대, 공공 의대 설립, 한방첩약 건강보험 적용, 비대면 진료 육성 등 정부의 4대의료 정책에 반발하는 의료진의 파업 및 집단 휴진 소식이 들려오자, 의료진들을 응원하던 국민들의 반응도 급격히 온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대한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이 ‘덕분에 캠페인’을 조롱하는 듯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들며 ‘덕분이라며 챌린지’를 시작하자, 그간 의료진들에게 무한 감사를 보내던 이들조차도 그들에게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갈등의 원인이나 역사에 대해 굳이 논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일반 국민의 눈에 당장 보이는 것은 이토록 코로나19 사태가 위중해지는 상황에서 파업을 선택하는 의사들의 집단 이기심뿐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간 대한의사협회가 차분한 협상력을 발휘했다면,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전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이슈가 되어 온 의료수가의 조정이나 기피과 이슈, 지역병원과의 격차 등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는 적기였으나 이제 그들은 국민적 지지 기반을 잃고 말았다.

게임업계는 의료계처럼 소위 ‘똥볼’을 차고 있진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례의 발굴과 홍보가 필수적이다. 과거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굴레가 되어 온 사행성, 중독성 등의 이슈에 매몰되어 방어에만 전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어느 업종이건 명암은 있기 마련이고, 어떻게 폐해를 줄일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긍정적인 면을 잘 활용할까에 대한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

아직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많은 이들이 사회 내에 존재한다. 특히 기득권일수록 그러한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내가 어릴 적 집에서 만화가 금기시 됐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게임과 교육이 대척점에 있던 과거와 달리 교육에도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활용하는 방법이 상당히 많은 학교들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고, 여타 사회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도 게임적인 요소가 결합해 얼마나 큰 시너지가 나는지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즉, 게임을 통해 지식이나 정보를 직접적으로 얻는 경우만이 순기능이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엄선된 만화책을 공짜로 주어 아버지의 만화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려는 동네 책방 주인의 시도는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만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는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동네 책방 주인과 같은 작은 시도들이 더 필요하며, 당장 빠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 시도가 결코 의미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임업계가 향후에도 한국 문화산업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리매김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날을 바란다면, 바로 지금의 대전환 시기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와 협회와 게임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보다 긴밀하게 전략적인 방안 논의를 진행하기 바란다. 그것도 조속히 말이다.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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