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선수 권리 보호가 핵심 … 문구 허점 지적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3일 e스포츠 표준계약서 3종 고시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5월 국회에서 문체부가 e스포츠 표준계약서를 업계에 권장하도록 의무화하는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이 통과된 후 2달만이다. 

문화부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초안을 만들었다. 행정예고 기간은 총 20일이다. 표준계약서는 개정 e스포츠진흥법과 함께 9월 10일 시행된다. 공개된 초안에 따르면 계약 시작·종료일의 연월일을 모두 명시하고 계약 기간을 일 단위로 구체적으로 적도록 규정해 계약의 기초적인 틀을 마련했다. 

e스포츠 표준계약서에 필요성에 대한 대두는 2019년 하반기 발생한 ‘그리핀 사태’에서 시작됐다. 당시 리그오브레전드 국제 e스포츠 대회 ‘월드 챔피언십’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한 그리핀의 김대호 감독이 조규남 대표와의 갈등을 폭로한 것이다. 

김 감독의 폭로는 월드 챔피언십을 치르고 있는 그리핀의 소드(최성원), 바이퍼(박도현) 선수의 저격성 인터뷰가 원인이 됐다. 이후 조규남 대표가 카나비(서진혁) 선수를 중국 프로팀 ‘징동 게이밍’에 매우 불합리한 조건으로 계약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미성년자 불공정계약건으로 번졌다.

국내 다양한 e스포츠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케스파)와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이 사건이 터진 후 자체적으로 진상 규명을 실시했다. 가장 중요한 ‘미성년자 불공정계약’건은 당시 존재했던 선수 계약서의 전반적인 검수와 재논의가 이뤄졌다. 

국민청원 2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큰 이목을 끌었던 사건은 표준계약서가 개정되고 카나비 선수가 자유계약(FA) 상태로 풀리며 일단락됐다. 카나비 선수는 이후 징동 게이밍과 정상적인 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김대호 감독은 국내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 팀 DRX와의 계약으로 복직했다. 

# 불공정계약 방지 목적

문화부가 발표한 e스포츠 표준계약서 초안은 지난 6월 8일 라이엇이 공개한 ‘2020 LCK 서머’ 공식 규정집 변경의 연장선상이다. 라이엇 측은 표준계약서가 선수 권익 보호와 공정한 e스포츠 리그를 위해 도입됐다고 밝혔다. 해당 계약서는 각 팀의 의견 수렴과 법무법인의 검토를 통해 완성됐다고 덧붙였다. 

표준계약서의 중요 사항은 ‘그리핀 사태’에서 비롯된 불공정계약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해외, 미성년 트레이드 조항이 새롭게 신설됐다. 해외지역 트레이드 시 소속 팀은 해당 선수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미성년 선수의 경우 법정 대리인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트레이드 시 기존 계약보다 불리한 처우로 계약 체결이 불가능하다.

또 게임단과 선수가 계약을 해지할 때는 상호 합의 하에 해지해야 한다. 선수가 계약 내용을 위반했더라도 30일간의 유예 기간을 둔 다음 계약을 해지하도록 해 선수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했다.

이외 e스포츠 선수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인 만큼 청소년 선수의 건강권·학습권·수면권·휴식권 등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표준계약서에 명시됐다. 또 선수 교육·훈련 비용을 게임단이 원칙적으로 부담하도록 했다. 대회 상금 등의 금품을 선수에게 나눠줄 땐 산정 증빙 자료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e스포츠 표준계약서 초안 내용 중 일부
e스포츠 표준계약서 초안 내용 중 일부

# 문구 허점은 없나?

이처럼 선수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서지만 일부 조항에서 허점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선수 권리 관련 문구는 모호한데 게임단 이익 관련 문구는 단정적이라는 지적이다.

표준계약서는 '게임단은 선수의 본명, 닉네임, 모든 가명, 사진, 초상, 필적, 기타 동일성(아이덴티티) 일체를 사용해 저작권·상표·디자인 등 지적재산을 개발하고 게임단 이름으로 이를 등록·이용할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했다.

또 계약 기간 종료 후에는 모든 권리를 선수에게 이전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게임단이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는 등 특별한 기여를 한 결과물은 계약 종료 후에도 선수에게 허락받은 범위 내에서 게임단이 저작권·지적재산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예외 사항이 있다. 

계약서는 선수 활동을 펼치다가 부상이나 질병을 얻었을 경우 게임단이 적절한 치료 등을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선수 권리를 확실히 보장하려면 '지원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리핀 사태 당시 이뤄진 국민청원 내용
그리핀 사태 당시 이뤄진 국민청원 내용

# e스포츠 활성화에 도움될까?

이러한 우려속에 행정예고 기간은 8월 2일까지다. 이 e스포츠 표준계약서가 국내 e스포츠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국내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 프로 리그에서 발생한 불공정계약 사건에 회의적인 의견을 보내기도 했다. 리그오브레전드 프로 리그가 이러한 불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인기 종목은 더 심각한 환경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따라서 표준계약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 계약서가 제대로 사용되는지 행정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전부터 e스포츠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는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국내 e스포츠가 황폐화된 경험이 있다. 많은 e스포츠 팬들은 ‘그리핀 사태’ 발생 당시 이 승부조작 사건을 기억하며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랐다. 이번 e스포츠 표준계약서가 국내 e스포츠 환경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더게임스데일리 신태웅 기자 tw333@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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