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의 게임의 법칙] 사전이든 사후이든 심의절차 없는 나라 없어…독일 호주 등은 더 엄격

미국의 비디오게임업체인 밸브코퍼레이션이 온라인게임 플랫폼인 스팀을 선보인 것은 2004년께였다. 화제작 ‘하프 라이프 2’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스팀이란 다소 이름조차 낯설은 온라인 게임 놀이마당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온라인게임 시장은 그렇게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같은 밸브의 시도는 업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만큼 세인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기 때문에 밸브의 온라인게임 플랫폼 사업 계획이 구체화될 수 있었다는 것은 시장 경쟁자들 조차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 그렇게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밸브측에서 스팀이라는 마켓 플레이스까지 만들어 지원한 까닭인지, 아니면 워낙 작품성이 뛰어나서 먹혀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판단할 순 없으나 ‘하프 라이프 2’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밸브측은 시장의 대단한 반향에 고무됐는지 이내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를 비롯한 ‘도타 2’ ‘팀 포트리스 클래식’ 등 자사의 유명 온라인 게임들을 잇달아 스팀에 올리게 된다. 이렇게 되자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스팀에 대한 유명세가 조심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게이브 뉴얼과 마이크 해링턴이 공동 설립한 밸브 코퍼레이션의 전신은 밸브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름을 밸브 코퍼레이션으로 바꾸게 된다. 이유는 그렇게 해야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게이브 뉴얼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명을 바꾼 다음에도 그렇게 성장세를 주도하지 못했다. 게임계에선 조금  알려지긴 했으나 , 그 정도였을 뿐이다.

밸브가 국내 제도권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전후의 시기였다.

국내 최고의 게임업체 CEO인 김 택진 사장이 자신의 보유지분 14.75%를 전격적이다 할 만큼 넥슨에 매각해 버렸기 때문이다. 시장은 곧 발칵 뒤집혔다. 당시 국내 게임시장은 김 택진 사장의 엔씨소프트와 김 정주 사장이 이끄는 넥슨이 사실상 주도하다 시피 해 왔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 컸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힘의 대결에서 넥슨이 승리를 거머 쥔듯한 상황에서 곧 반전의 소식이 전해졌다. 김 택진 사장이 자신의 지분을 매각한 것은 김 정주 사장과의 도원결의에 의한 결과물이었고 여기엔 밸브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에대해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 항간에는 당시 두 사람이 지분을 정리해 세계적인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 아츠(EA)를 인수키로 했다는 설과 밸브를 사들이기로 했다는 설이 동시에 나돌기도 했으나, 후자쪽이 보다 유력한 답이다. 게임업계에서는 두 사람이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을 약 1조 5천억원에서 2조원 사이로 봤는데, 그 금액으로 EA를 인수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밸브는 그렇지가 않았다. 국제 M&A 시장에서는 밸브의 몸값을 대략 2조원 아래로 봤고, 김 정주 사장도 그 정도면 매력적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막상 협상에 들어가자 급반전이 이뤄졌다. M&A 뚜껑을 열자 밸브측에서 요즘 시쳇말로 ‘됐거든’이라는 강력한 거부 의사 표명이 나왔다. 한마디로 팔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M&A가 파기된 이후, 밸브에 대한 커다란 이슈는 사그러 지는 듯 했다. 하지만 곧 무명의 게임업체들의 돌풍이 또다시 밸브를 세인들의 관심 속으로 몰아세웠다.

크래프톤(옛 블루홀) 자회사인 펍지에서 만든 서바이벌 슈터게임인 ‘배틀 그라운드’가 밸브의 온라인 포털인 스팀에서 인기 게임으로 자리잡으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여기에 뒤질세라 펄어비스의 메인 히트작 ‘검은 사막’ 역시 스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중소 게임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스팀을 노크했고, 스팀에 접근했다. 이에 따라 스팀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이국 나라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가 아닌 셈이 됐다.

최근 스팀측과 국내에서 게임 심의를 담당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얘기인 즉은, 한국의 게임위측이 스팀에서 국내에 서비스하는 게임에 대해 심의 절차를 밟아 달라고 요구했는데,  스팀측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스팀도 예외일 순 없다는 것이다. 과거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젠 스팀은 글로벌 게임 플랫폼이다. 이는 곧 한국의 게임 플랫폼이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에 대해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나라는 없다. 사전에 이뤄지느냐, 아니면 사후에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고,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냐 아니면 민간에 의해 이뤄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호주와 독일의 경우 게임심의 만큼은 아주 까탈스럽고 강력하게 진행한다. 스팀의 국적지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젠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유연하지만 폭력물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일각에선 그렇게 하게 되면 스팀측에서 한국 게임에 대해 불이익을 주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으나, 그 정도로 가벼운 처신의 플랫폼이었으면 오늘날의 스팀으로 자리매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측에서 인수 제안을 하자 일언지하, ‘됐거든’이라고 답한 밸브측이 이번엔 스팀을 통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다시 ‘됐거든’이라고 한다면 정말 곤란하다 하겠다. 그 땐 자신들의 선택사항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로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모 인 뉴스 1에디터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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