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같은 스타 PD 발굴·육성해야…PD의 자율권 확보도 중요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석권이후, 기생충 관련 소식이 끊이지 않고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소위 '국뽕'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쉴 새 없이 이슈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이는 이제껏 아카데미의 최고 영광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상을 받았던 예년 작품들의 경우와 비교해 보아도 보기 힘든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봉준호 감독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슈가 되고, 영화 속에 스쳐간 소품들마저 매출이 급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는 추세다. 각 매체들마다, 각 전문가들마다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하고 시대적 흐름이나 오스카의 역사,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적 현실까지 소환하며 기생충의 의의를 조명하곤 한다. 

사실, 기생충이 작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듯 기생충이 아카데미 주요 부문들마저 석권하리라고 기대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칸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모두 석권한 경우는 1955년 미국영화였던 ‘마티’가 유일했기 때문. 가장 미국다운 전쟁영화인 '1917'이 아카데미 작품상의 강력한 후보로서 버티고 있었고, 비영어권 영화가 한 번도 작품상을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아카데미상의 성격도 익히 알려진 터라, 기생충의 주요 부문 시상에는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황금종려상은 작품성의 상징이고, 아카데미상은 상업성의 상징이라고. 그런데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현실에 부딪쳐 본 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 장벽을, 기생충은, 아니 봉준호 감독은 넘어섰다.

이제 게임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 게임에서도 기생충과 같은 업적을 이룬 게임이 있었을까? 아니면 앞으로는 나올 수 있을까? 한국이 온라인게임 강국으로 올라섰던 시기에도 엄청난 상업적 부를 이룬 게임들이 있었고 나름 서구까지 유명세를 떨친 게임들이 있었지만, 주로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권에서의 성공을 후광으로 얻은 성과였다. 펍지의 ‘배틀그라운드’가 글로벌한 성과를 거둔 최초의 케이스라 할만하지만, ‘ARMA3’의 모드로 개발된 배틀로얄, 거기서 이어진 ‘H1Z1’의 원작자인 브랜든그린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여 개발이 진행된 경우라 순수한 한국 게임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다.

기생충이 맞서야 했던 외국 영화에 대한 서구권의 인식, 선입견이, 게임 영역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 게임에 대한 서구권의 인식 역시,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자주 표현되는 것이, 한국 게임은 Greedy (탐욕스러운)하다는 식의 과금 모델에 대한 비판이나, Grinding (속칭 반복 노가다)의 비중이 게임플레이에서 너무 크다, 혹은 완성도가 낮다는 불만 등이다. 굳이 상업성과 작품성을 나누어 평가하자면, 상업성을 갖춘 게임들은 그나마 꾸준히 나오지만, 작품성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게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고나 할까?

물론, 완성품이 되어야 판매할 수 있던 패키지게임 제작에서부터 착실히 게임 개발의 기본을 다져온 서구권과, 좀 부족하더라도 서비스하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온라인게임 중심으로 개발이 시작된 한국은 게임을 대하는 자세, 그 태생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부족한 시간과 자금의 압박 속에 급히 제작돼야 하는 게임에는 인문학적 소양은커녕 완성도조차 기대하기 어려웠고, 새로운 도전보다 검증되고 안정된 게임 시스템이 우선됐다. 비슷한 게임인데 배경 설정 바꾸고 그래픽만 다른 수많은 게임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들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PD의 자율권 확보이다. 역량 있는 PD에게 회사에서 요구하는 게임을 만들도록 하기보다,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길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 또한, 실패를 하더라도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회사 중심이 아닌 PD 중심의 투자 체계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부족해 투자자에 혹은 배급사에 휘둘리고, 시간에 쫓기고, 첫 작품이었던 ‘플란더스의 개(2000)’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투자해 손해를 입었던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가 다시 기회를 주어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만들게 되고, 계속적으로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나가 결국 오늘날의 성과를 일구어 내었다. 게임에서도 그러한 스타 감독(PD)이 발굴되고, 육성되고, 지원되고,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성공하는 유수 게임들의 복제판을 제작하는 대신 자신만의 영역을 쌓고, 깊이를 더하여,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그러한 게임으로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 날이 있을까?

한국 게임사를 되짚어보면, 그러한 가능성을 가진 이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RPG와 RTS 접목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택티컬커맨더스(2001)’, 전투 중심의 RPG를 벗어나려고 했던 ‘마비노기(2004)’, 역사적인 소재 내에 RTS와 MMORPG로 이어지는 시도를 했던 ‘거상’ ‘군주’ ‘아틀란티카’ 등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상업적인 성취도 일구어냈던 이들은 아직 게임업계에 남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축적된 기술력과 뛰어난 비주얼을 주무기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몇몇 PD와 회사들도 있지만, 서구에서까지 작품성으로도 인정받기 위해선 크리에이티브한 무언가가 다소 아쉬운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러한 말을 했다.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장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냐면, 바로 앞에 계신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님이십니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 최고의 자리로 올라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헐리우드의 성공 문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기다운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 게임의 글로벌 도약에 필요한 것 역시, 각 게임의 PD들이 익숙한 성공게임들의 문법을 따르는 대신, 가장 자기다운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환경의 조성을 위해, 개인은, 회사는, 업계는, 그리고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한번쯤 곱씹어볼 일이다.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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