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1세대 김택진, 역사의 주역…역전의 오뚜기 방준혁 일취월장

사진=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더게임스가 창간한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인사들이 더게임스 지면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을 알렸다.

인터뷰 당시 이미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인물도 있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업체를 막 시작한 인물도 있었다.  그들은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침을 거듭하며 게임업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ICT산업을 주무르는 거물로 성장했는가 하면 여러 시련을 겪다 업계를 떠나기도 했다.

더게임스는 500호를 맞아 더게임스와 함께 했던 인물들을 다시 한번 조명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 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에는 1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며 선구자역할을 해온 1세대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지금의 게임산업을 만들어낸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게임업계 산 역사 김택진과 방준혁, 김범수

사진=왼쪽부터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엔씨소프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 업체 중 하나다. 특히 온라인게임에  이어 모바일게임까지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이다.

이 회사를 20여년 간 이끌어 온 김택진 대표의 존재감은 대체불가하다는 평이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최근 '리니지M' 광고 영상에 출연하는 등 예상밖의 행보로 화제성까지 더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004년 본지 인터뷰를 통해 '리니지'가  이렇게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될지 전혀 몰랐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 "우리가 만든 게임이 문화상품으로 수출되는 것을 보고  게임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면서 "그러나 한편으론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맞서는 과정이 고비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10여년 전 김 대표는 "앞으로  미래를 전망하기 쉽지 않지만, 언제든 가장 앞선 온라인게임 업체로 남아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성공을 비롯해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을 잇따라 흥행시키며 온라인게임의 자존심을 지켜왔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모바일게임 시장 도전을 본격화한데 이어 올해 선보인 '리니지M'을 통해 판세를 완전히 뒤집는데 성공했다. 때문에 김 대표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역시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회사 오너로서 존재감을 보여준 김택진 대표와 비교가 되는 인물 중 하나는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이사회 의장이라 할 수 있다. 방 의장은 게임계를 떠났다가 벼랑 끝에 몰리는 위기의 순간 돌아와 넷마블을 업계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방 의장은 지난 2000년 게임포털 넷마블을 설립했으며 로커스홀딩스(플레너스)를 통해 우회상장한 후 2004년 CJ그룹에 800여억원에 회사를 매각, 벤처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또 회사 매각 이후에도 2006년까지 CJ인터넷 대표를 맡아 웹보드게임과 ‘서든어택’ ‘마구마구’ 등 퍼블리싱 게임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넷마블을 NHN, 네오위즈 등과 함께 3대 게임포털 및 퍼블리셔로 키워냈다.

그러나 이후 넷마블은 강력한 캐시카우였던 '서든어택'을 넥슨에 넘겨준데 이어 새로운 흥행작을 발굴하지 못하며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이 가운데 방 의장이 모바일 시장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함에 따라 재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15년부터 매년 기자 간담회 '넷마블 투게더 위드 프레스(NTP)'를 통해 한해 성과 및 내년 계획을 밝히고 있다.

특히 첫 NTP 자리에서는 "2013년까지만 해도 생존 위기에 처했으나 이를 어느 정도 해결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게임 업계의 경우 사람이 핵심이기 때문에 리더로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넷마블은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코스피 상장 업체로 거듭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더게임스가 창간하던 2004년, 게임 업계 권익을 대변하는 민간단체 한국게임산업협회도 출범했다. 이 단체의 초대 회장은 당시 NHN 대표였던 김범수 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맡았다.

김 의장은 한게임을 창업한 이후 네이버와 합병을 통해 NHN 대표로 활약해왔으나 경영상 의견 차이로 NHN을 떠났다. 그는 이후 모바일 시대에 주목하며 카카오톡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카카오의 인공지능(AI) 기술 자회사 카카오브레인 대표를 맡는 등 신기술 시장 개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 의장이 게입 사업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이 카카오의 핵심 사업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의 향후 행보 역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모바일 터줏대감 송병준과 시대를 앞서 간 남궁훈

사진=왼쪽부터 송병준 게임빌 대표,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

1세대 모바일게임인으로 한 우물을 파온 송병준 게임빌 대표는 2013년 큰 결단을 내린다. 그는 모바일 전문 업체의 양대 산맥이자 라이벌로 여겨졌던 컴투스를 인수해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송 대표는 이후 양사 독립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너지를 창출하는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왔다.

이 가운데 컴투스가 선보인 '서머너즈 워'가 해외 시장에서 이례적인 흥행세를 기록함에 따라 송 대표의 결단은 더욱 빛이 나게 됐다. 이 가운데 최근 양사의 해외 법인 통합 작업이 추진됐다는 점에서 송 대표가 이전까지와 다른 새로운 전략을 펼치는 것은 아닌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는 시대를 앞서 내다보며 종횡무진 존재감을 과시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NHN한게임을 창업하며 게임업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CJ인터넷 대표를 거쳐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맡았다.

특히 위메이드 대표 시절 모바일게임의 급격한 성장세를 내다보고 체질전환에 나섰으며 카카오와 긴밀한 협업을 펼쳐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남궁 대표는 지난 2013년 현업에서 은퇴하며 대표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대신 게임인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인디 게임 발굴 환경 조성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그는 2015년 퍼블리싱 플랫폼 업체 엔진 대표로 현업에 복귀했다. 또 2016년 엔진이 다음게임과 합병되고 카카오게임즈로 사명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그 역시 카카오의 게임 사업을 총괄하는 부사장에 선임돼 업계 주목을 받게 됐다.

이 가운데 지난달 카카오의 게임 사업이 모두 카카오게임즈로 통합되며 새롭게 출범함에 따라 남궁 대표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가 앞으로 카카오게임즈 상장을 위한 기업가치 제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게임계 출신 1호 정치인 김병관과 뒤늦은 벤처신화 주인공 김대일

사진=왼쪽부터 김병관 의원(더불어민주당), 김대일 펄어비스 의장.

 게임 업계는 문화 콘텐츠 수출 일등공신으로 국가 경쟁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해왔으나,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해왔다. 이 때문에 첫 게임계 출신 국회의원 탄생은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김병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넥슨 개발팀장, NHN게임스 대표를 거쳐 웹젠 이사회 의장을 맡았으며 지난해 돌연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후 그는 분당구 갑 지역구 공천을 통해 선거 레이스를 시작했고 당시 권혁세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 단숨에 정치권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이지만, 게임 산업 현안을 논하는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늘려가며 게임계 출신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정치권에 뛰어든 초선 의원인 그가 조급할 게 아니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개발자로 전념하다 뒤늦게 창업해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 있다.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은 ‘검은사막’이라는 온라인게임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지난 2006년 NHN게임스에서 온라인게임 ‘R2’ 개발에 매진하던 시절 본지 인터뷰를 통해 “단지 게임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 “어떤 유저라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개발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2009년 ‘C9’를 개발하던 당시 그는 또 “최대한 오래 개발자로 남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회사 운영은 경영자들의 몫이고 개발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 의장이 지난해 대표직을 내려놓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에서다. 그는 최근 ‘검은사막’ 리마스터링 코딩 작업에 매진하는 등 여전히 개발자로서 실력 발휘에 나서고 있다.

이 가운데 김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으로 중국을 방문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 게임계를 떠나거나 시련을 겪은 사람들 ]

사진=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대형 전 파티게임즈 대표, 장원상 네시삼십삼분 대표, 김정주 NXC 회장, 김영만 비엔엠홀딩스 회장.

게임업계에서 성공한 사람도 많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간 인물도 적지 않다. 성공을 하고 미련 없이 게임판을 떠났거나 사업부진으로 떠났거나 사연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자리를 비웠다.

또 한 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컴백하거나 다시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있다. 지금의 시련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러브 커피'를 흥행시킨 이대형 파티게임즈 창업자의 올해 행보는 기대주의 추락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는 모바일게임 시대의 신생 스타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으나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국 2015년 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통해 전문경영인을 발탁하는 등 재기를 노리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보유 지분 전량을 모다정보통신에 넘기며 경영권을 매각해버렸다. 또 결국 지난 6월께 파티게임즈를 퇴사한 것으로 확인돼 이전까지의 성공담과 대비되는 초라한 결말을 맺게 됐다.

이와함께 모바일게임 신흥 강자로 주목을 받았던 네시삼십삼분도 최근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퍼블리싱 사업을 축소하며 개발 중심 회사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10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장원상 단독 대표로 전환됐다.

때문에 네시삼십삼분을 만든 권준모 이사회 의장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이도 적지 않다. 벤처 창업과 투자의 귀재라는 평을 받았던 그가 다시 한번 판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회사는 과거 소태환, 양귀성 대표 체제 전환과 맞물려 '활'을 비롯해 '블레이드' 등을 흥행시키며 급부상하게 됐다. 지난 2012년 당시 소 전 대표는 본지 인터뷰를 통해 "회사 이름처럼 독특한 게임을 만들고 싶다"며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고 독특한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 전 대표는 지난해 대표직을 내려놓고 주요 프로젝트의 서비스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COO 역할을 맡게 됐다. 최근 이 회사가 위기 속 체질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그가 다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귀추가 주목된다는 것이다.

앞서 오너들과 달리 좀처럼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아 은둔자로 여겨졌던 김정주 NXC 회장은 지난해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 제공 혐의로 기소돼 업계에 충격을 가져다 줬다. 또 지난 7월에는 무죄 원심이 뒤집히며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는 아쉬움을 남겼다.

김영만 비엔엠홀딩스 회장은 비록 게임업계를 떠났지만 과거 업계를 돌보는 큰 형 역할을 제대로 해온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는 게임산업협회장을 맡아 무게감을 보여준 것은 물론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펼치며 탄탄한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는 평을 받아왔다. 게임업계에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한 시점에서 그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더게임스 이주환 기자 nennenew@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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