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엔 쉼터가 없는 사각지대'

스트레스 강도 타업종에 비해 '월등'…정신건강 증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절실

최근 게임업계에서 잇따라 자살 및 돌연사 사건이 발생해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같은 사건이 게임업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은 물론이거니와 중소기업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근무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직원들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까지 기업에서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들을 계기로 게임업계가 다시한번 근무환경을 돌아보고 더 좋은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이달까지 총 네 명의 게임 개발자가 자살 및 돌연사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따라 게임업계 환경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업체들이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이었다는 점에서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나 획일적인 조직문화로 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 문제를 업체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야근.특근 밥먹듯 되풀이

10년 이상 게임업체에서 일해온 사람들은 최근 근무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시장의 트렌드가 예전의 온라인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일하는 패턴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근무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PC 온라인 게임의 경우 평균 개발 기간이 3년에서 5년가량이며, 작품의 라이프사이클도 비교적 긴 편이었다. 그러나 모바일 게임의 경우 유행에 민감하고 작품의 라이프사이클이 비교적 짧아, 작품 개발에 충분한 시간이 배정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러한 개발환경 변화는 개발자들로 하여금 빠른 시간에 퀄리티 높은 작품을 개발하도록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촉박한 시간에 작품을 완성시키려면 야근과 특근 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이같은 일들을 ‘크런치 모드’라고 말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크런치 모드가 짧게는 한달, 길어질 경우 수개월씩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법정 근로시간인 주당 40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당 100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이 수 개월 계속된다면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중한 업무가 특정 업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업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같은 근무형태가 관행처럼 인식되다보니 많은 개발자들이 이를 거부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다고 털어놓고 있다.

더욱이 일부 회사의 경우 이러한 관행을 악용해 처음부터 무리한 일정을 잡거나, 초과근무를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의들은 이 같은 과로가 지속될 경우 극도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는 물론, 각종 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심할 경우에 돌연사 등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것도 혹독한 개발환경을 만들는 주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모바일게임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영진과 주주들이 무리한 일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 주당 1백시간 일하는 경우도

게임업체에서 근무해본 개발자들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잘 나가는 업체는 그런 대로 또 어려운 업체는 어려운 대로 애로사항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수십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소업체다 보니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많은 게임업체들이 ‘포괄임금제’의 형태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연장 및 야간근로 등 시간외 근로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 지급하는 형태다.

이러한 계약이 체결될 경우 회사가 게임 개발자에게 야근 및 특근을 지시해도 별도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일방적으로 부당한 상황이 연출되게 된다.

또한 회사측이 처음부터 이러한 제도를 악용해 적은 인력을 채용해 부족한 노동력의 대해서는 초과근무로 대체하는 현상 또한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최근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2012년 이후 국내 게임업계는 회사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개발자 등 직원 숫자는 감소하고 있는 기형적 구조”라며 “업무강도는 높아지는 반면 급여, 복지에는 변화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환경이 굳어지게 원인 중 하나로는 게임 개발자들의 특유의 성향 등이 꼽히기도 했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의 경우가 자신이 좋아서 일을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타 직종들과 달리 노동조건을 상세히 살펴보고 계약하거나,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울 요구하는 분위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게임 개발자들의 경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단체로 모여 사측과 대립하거나 시위를 하는 등의 행동도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 되면 말 없이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 들어 게임업체 직원들이 잇따라 자살하거나 돌연사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언가 문제가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식도 커지고 있다.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지난 2013년 게임개발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발족한 게임개발자연대가 있다. 또 최근에는 노동건강연대에서 모 게임업체를 대상으로 업무환경 조사를 실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현실에 맞는 대응책 마련해야

특히 최근에는 정치권에서도 게임업계 환경개선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18일 정의당 등 정치권에서는 게임업계의 노동환경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정의당은 게임 개발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이 고작 3년에 불과했다며 일하고 싶지 않은 노동환경, 일할 수 없는 노동환경으로 노동자들을 내몬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게임업계 직원들의 자살과 돌연사가 회사만의 문제라고 몰고 가는 것도 적절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직원들의 건강과 정신을 회사가 일일이 관리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임산업이 거대화 되고 게임업체들도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와 같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기계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같은 사건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업체는 정신노동자들로 이뤄진 집단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육체노동자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며 “섬세하고 치밀한 일을 하다보면 육체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더게임스 강인석 기자 kang12@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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