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규제ㆍ외산공세 냉기 더해…장기적 안목 통해 내실 다져야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봄이 한창임을 알린다. 따스한 바람을 타고 꽃내음이 창문을 통해 코를 살살 간지른다. 긴 겨울 동안 찬바람과 눈서리를 견뎌내며 땅속에 꼭꼭 숨어있던 들풀과 꽃들이 푸른 잎을 조금씩 내밀며 햇빛을 받으려 애쓰고 있다. 봄이 왔나보다.

이제 곧 초록의 물결이 온 산과 들에 더욱 풍성하게 깔리고 짙어질 것이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봄이지만 언제나 봄은 부푼 희망과 꿈과 새롭게 도약하는 열정을 안겨다 준다.

살며시 눈을 감고 봄의 기운을 만끽하며 창가에 떨어지는 햇빛을 품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고난의 겨울이 지나면 희망의 봄이 찾아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대한민국 게임업계의 겨울은 찬바람만이 더욱 거세어 가고 있어 봄소식을 기다리다 지쳐버렸다. 얼마나 더 꽁꽁 얼어붙은 이 얼음 밑에서 시련을 견뎌내야만 저 들판에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들처럼 새로운 희망을 키워낼 수 있을지 답답한 심경만 가득하다.

대한민국 게임업계는 막강한 인터넷 인프라를 바탕으로 PC온라인게임의 종주국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화려하게 성장해왔다. 국내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대한민국 게임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며 디지털콘텐츠 수출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감당해 냈다. 스마트폰 빅뱅의 시기를 거치며 PC온라인게임 산업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스마트폰게임 산업으로 옮겨가 새로운 시장을 일궈내며 또 다른 신대륙의 꿈을 펼쳐왔다. 물론 게임콘텐츠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인식과 선입견 때문에 대 놓고 게임을 응원하지는 못했으나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으로서 그 가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고난이 있다하더라도 게임 산업의 성장과 미래는 여전히 핑크빛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게임업계의 상황은 점점 더 깊은 겨울한파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 같다. 한류를 이끄는 효자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게임콘텐츠에 질병의 코드를 부여하겠다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매출 기준으로 전 세계 4위의 규모를 기록하고 있는 게임 산업을 정부가 두 팔 걷어붙이고 키워내기는 커녕 규제와 제한으로 일관하여 2013년을 기점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발표에 의하면 2010년 2만658개에 이르던 게임업체의 수가 2014년에는 1만4440개로 30%나 급감했으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대형 퍼블리셔와 개발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악의 생태계마저 조성되어 실력 있고 창의적인 중소 개발스튜디오들이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내의 우수한 게임개발 인력들이 대한민국 게임업계의 빙하기를 견뎌내지 못하고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국가의 게임업체들이 국내 개발자에게 파격적인 연봉과 복지를 제안하며 대한민국 게임개발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임산업 육성에 국가의 온 열정을 쏟아 붙고 있는 나라에서는 파격적인 대우 뿐 아니라 게임개발 인력을 존중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조성되어 있어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대한민국 게임개발 인력들에게는 뿌리치지 못할 유혹이 되고 있다.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 우수한 개발기술력을 앞세운 국내게임개발업체들의 기획의 땅이었던 중국마저도 이제 거대한 물결이 되어 거꾸로 국내 게임 산업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단순히 거대자본력을 앞세운 ‘판다 쇼핑(Panda Shopping)’이 아닌 게임콘텐츠의 질적 우수성을 바탕으로 국내게이머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구글플레이 게임 카테고리 매출 상위 50위 내의 외국산 게임은 모두 16개(32%)이다. 이 중 중국 업체가 서비스하는 게임이 7개(43%)로 몇 년 전 상황과는 판이하다. 특히 중국 킹넷이 웹젠으로부터 ‘뮤 온라인’ 판권을 산 뒤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것처럼 국내게임업체에서 산 IP를 활용해서 개발한 게임을 역수출하고 있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게임성 마저도 우수하고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내에 법인을 구축하여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등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 게임계의 역공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미 겨울은 오랫동안 우리를 쪼그라들게 하고 있다. 너무도 추워 밖으로 나가서 먹을 것을 찾는 것조차 포기하고 긴긴 겨울잠을 스스로 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근래 들어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희망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 너도나도 동면을 깨고 새로운 땅으로 몰려드는 것도 실상 허와 실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모험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이슈거리 찾기에 목마른 정부의 부풀리기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신산업구축을 위한 토양다지기가 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믿고 따라갈 수가 없다.

규제보단 투자에 집중하고, 대형개발업체보단 실력 있는 중소개발업체를 살리기에 노력하고, 이슈거리 만들기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 안목으로 내실 다지기에 충실하고, 게임 산업에 대한 그 어떤 정치적 목적의 매도가 사라져 국민의 인식이 올바르게 바뀌어 간다면 대한민국 게임 산업에도 다시금 봄날이 오지 않을까. 그 어느 때 보다도 따스한 봄 햇살이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최삼하 서강대 게임교육원 교수 funmaker@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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