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또다른 역사를 서술…우리 게임계의 인식부족 현상 심각

게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하긴보섬이 최초의 게임을 선보인 것은 1958년 즘의 일이다. 연구소 견학을 오는 학생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만든 ‘테니스 퍼 투’란 게임이었다. 오늘날의 그 것과 비교하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의 게임이었지만 규칙 등을 동반한 내용과 형식은 당시로서는 사고를 완전히 전단해야만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후 그에 대한 행적은 게임계에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종사하는 인물이 아닌 핵물리학자란 이질적인 신분 요소도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인류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훌훌 자리를 털고 떠나 버린 그의 소신 때문이 아니었나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반면 이를 바탕으로 게임의 대중화를 이끈 이는 ‘아타리’라는 게임기업을 창립한 미국의 놀런 부시넬이란 인물이다. 그는 ‘컴퓨터 스페이스’ ‘퐁’이라는 게임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그는 발표하는 작품들 마다 흥행에 성공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기대했던 작품은 참패함으로써 발목을 잡히고 만다. 끝내 자신의 회사 이름을 딴 주가 대폭락 사태(아타리 쇼크)로 인해 그는 게임계에서 퇴출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대중 스타들만 명멸하며 사라지는 게 아니다. 개발자도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회자 되는 건 다름아닌 그들의 이름과 작품뿐이다.

스마트 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주 포클랜드의 리드 대학을 중퇴하고 놀런 부시넬이 창립한 ‘아타리’사에 입사한 것은 한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가까스로 회사에 눈도장을 찍은 그의 사내 궤적은 정확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아타리 사에서 배운 것을 빠짐없이 현장에서 써 먹었다. 그의 기기 개발의 발상은 거의 게임적인 요소가 많다. 또 ‘아타리’가 사훈처럼 받들어 온 ‘그 건 안돼 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을 그는 철저히 신봉했다. 학계에서는 애플이 고비 때마다 스마트 폰 등 새로운 기기를 선보이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의 이같은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기록은 또다른 기록을 낳고 역사는 또다른 역사를 서술한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로운 교훈이 아니다.

지금도 일본의 기초 부품산업에 한참 뒤져 있는 한국 기술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 것은 일본의 기술인들은 후진을 위해 메모 책을 남겨 주지만, 한국의 기술인들은 오로지 입으로 기술만 알려 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술의 장인이 자리를 뜨거나 떠나가게 되면, 그 기술은 단절되고 사장되고 만다.

대한민국 게임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솔직히 확실한 게 거의 없다.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PC 게임의 족보나 흔적도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그나마 온라인 게임에 대한 계보 정도만이라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온라인 게임에 관심을 쏟아온 업계 신문사들의 덕이다.

기록은 한마디로 역사라 할 수 있다. 게임계의 소사가 모여 게임계의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가 문화를 이룩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직업의식 또는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한다. 높은 도덕성은 차치하더라도 산업에 대한 통찰력 정도는 필요하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게임계에 기록과 역사가 태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인들이 산업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또 아니라고 확신하며 얘기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고민거리다.

그같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게임이란 흥행 사업의 특성으로, 주변을 챙길 여력이 없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또 사회적 책임감이란 것도 겨우 기업 활동의 일환으로서만 이뤄진다. 그 때문에 사회 공헌이란 것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올 뿐이다. 주변에서 그러지 말라고 나무래도 나몰라라 식이다. 오로지 게임계는 게임만 있을 뿐이다는 외통수의 모습만 연출해 보여줄 뿐이다.

어느 순간, 돈만 잘 벌면 된다는 식의 저급한 천민주의 사상이 게임계에 만연돼 버렸다. 잘 나간다는 업체 일수록 더 그렇다. 기업이 공개되면 그 기업은 제도권의 사회 기업에 속한다. 그럼에도 마치 개인 기업처럼 독단 경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기록과 역사는 사치와 허영일 따름이다.

하지만 게임계란 데가 나홀로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인 곳인가. 소명의식도, 사회적 인식도 그리고 장인 정신도 소멸된, 그저 그런 곳이던가.

윌리엄 하긴보섬은 게임이란 문명의 이기를 조건없이 인류에 선물하고 떠났다. 게임을 통해 엄청난 돈을 치부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타리’의 놀런 부시넬도 ‘아타리 쇼크’가 이어지자 지체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변을 의식했고 사회를 두려워 했으며 역사를 의식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게임계에서 배운 기록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냈다.

대한민국 게임계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기록과 역사는 내일을 위한 우리의 거울이자 삶의 바로미터이다. 성공한 게임인보다 그렇지 않은 게임인들의 땀과 노력이 더 짙게 베인 곳이 다름 아닌 게임계이다. 그런데 게임계에 대한 그 저급한 풍토를 누구 만들어 왔는가. 보여지는 건 표면 아래가 아니라 표면 위인 것이다. 표면위에 서 있는 그들에게 묻고싶다. 당신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먹고 사는가 하고 말이다.

[더게임스 모인 뉴스1 에디터 /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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