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는 ‘준비 중’…업계는 ‘나 몰라라’

11월 이전 설립은 현실적으로 무리…주요 상장사들 결단 촉구

게임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이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정에 쫓겨 졸속으로 진행되는게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오는 11월께 게임물관리위원회로 변경되고 게임심의기관에서 사후관리조직으로 바뀌게 된다. 이에따라 등급분류 업무를 관장할 민간단체가 11월 이전에 출범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자율심의기구가 최소 2~3개월의 시범 운영 기간을 감안한다면 내달 중 자율심의기구 선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아직 뚜렷하게 윤곽이 드러난 게 없다. 정부 측은 준비됐는데 업계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자율심의기구 설립을 추진 중인 한국게임산업협회 조차도 ‘준비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일의 진척 상황을 밝히지 않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남경필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의 리더십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열린 임시국회에서 게임물등급위원회(위원장 백화종)와 관련한 게임법이 통과된 이후 정부 측의 게임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이 순조로워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게임위의 업무를 사후관리 중심으로 변경하고, 명칭도 게임물관리위원회로 변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포했다.

지난 2011년 7월 정부가 이 법안을 입법예고한지 1년 10개월만의 일이다. 전병헌 의원이 지난해 9월 게임물등급위원회 해체와 동시에 모든 게임 심의를 민간이양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게임법을 입법발의 했지만 국회는 결국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생사의 기로에 섰던 게임위가 기관의 성격만 바뀐채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후 정부 측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게임위는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에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게임위는 이 개정안이 공포되자마자 게임물관리위원회 설립 추진단 명단을 밝히며 등급분류 작업에 속도를 냈다.
게임위는 5인 실무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산업계 대표로 최규남 제주항공 대표를, 학계 대표로 김민규 아주대 교수와 박형준 성신여대 교수를, 그리고 법조계 대표로 이헌욱 변호사를, 그리고 정부측 대표로 송수근 콘텐츠정책관 등 5인의 위원을 각각 선정했다.
이들은 앞으로 게임물 관리위원회의 정관과 운영 규정, 그리고 조직 등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게 되며 , 11월 게임물관리위가 정식 출범하게 되면 자동 해산하게 된다.게임위 관계자는 “게임위에서 할 수 있는 민간이양 작업 준비는 마쳤다”며 “자율심의기구가 선정되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에 자신 있다는 설명이다.

# 이제 ‘공’은 업계로 넘어와

문제는 등급분류 민간이양 수탁 기관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문화재단이 지난해 말 자율심의기구 설립 추진 사업을 포기하고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유일하게 게임자율심의기구 설립을 추진 중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협회 측은 ‘준비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운영위원회에서 자율심의기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협회는 그동안 게임위의 향배에 따라 자율심의기구 준비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게임위의 운명이 결정돼야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달 초 게임법이 국회를 통과한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자율심의기구 설립 작업과 관련해 묵묵부답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과 관련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에따라 업계 안팎에서 협회의 등급분류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이 일정에 쫓겨 졸속으로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등급분류 업무는 신뢰감이 생명”이라며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 과정에서 오랜기간 동안 여러번의 시험 운영을 통해 실수가 없도록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 핵심은 ‘운영 자금’ 문제

이처럼 자율심의기구 설립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자금 문제 때문이다. 당초 게임문화재단이 이 업무를 이양받기로 했지만 운영자금 마련과 관련해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포기하게 됐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등급분류 업무 민간 이양 작업이 미뤄지는 요인을 자율심의기구의 수익대비 고비용 구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현재의 게임산업진흥법에서는 자율심의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결국 게임자율심의기구가 운영되려면 심의수수료를 인상하거나 게임회사들의 지원을 받는 방안이 유력하다.

심의수수료 인상은 자칫 게임회사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의기구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중소게임회사는 비용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심의수수료가 게임자율심의기구의 주 수입원이 될 것으로 유력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수료만으로 심의기구 운영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임위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자율심의기구 운영비로 연간 16억원이 사용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등급분류회의 운영비와 각종 행정지원비, 인건비, 전산개발비 등이 포함된다.

문화부는 자율심의기구 자격 요건으로 3년간의 운영자금 확보 조항을 내걸었다. 정부는 매년 10억원씩 계산해 3년간 총 30억원의 운영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금 출원에 대해서는 업계에서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규모나 기준에 대해 업계 간 의견 조율이 어렵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게임산업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변기에 서있는 만큼 업체들은 긴축경영을 펼치고 있어 자발적으로 비용 지출을 감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게임 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율심의기구 설립이 양보 없는 자사 이기주의로 인해 어려워지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 산업 위축에 돈줄 말라

업계에서는 주요 상장사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게임 심의 권한을 요구해왔던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에 소극적”이라며 “주요 메이저 업체들을 중심으로 분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큰 형들인 주요 상장사들이 목소리를 내야 동생격인 중소업체들이 밑바탕이 되주지 않겠냐”며 “최근 메이저 회사들의 행보를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일부 메이저 업체들이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게임업계 전체를 위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늦어도 내달 안에 게임자율심의기구가 설립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략 5개월이란 시간이 남았는데 원활한 민간이양 작업이 이뤄지려면 최소 5개월 이상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5개월 만에 게임위가 수년 동안 맡았던 등급분류 업무를 전문성이 부족한 민간단체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설명이다.

남경필 한국게임협회장이 등급분류 민간이양 작업과 관련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더게임스 김성현 기자 ksh88@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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