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작 ‘데몰리션 맨’이라는 영화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1996년 냉동감옥에 갇히게 된 존 스파르탄 (실베스타 스탤론)이 2032년의 미래에 풀려난다. 그 시대 세상에선,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복고 음악으로 몇 십 초도 되지 않는 짧은 CM송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보다 편한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며, 촉박한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일수록 지긋이 앉아 무언가를 오랫동안 즐길 여력도 갖지 못하게 되어가는 현실이다. 게임의 변혁사도 어쩌면, 그러한 시대적인 추세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간편함’, 이 단어를 통해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게임 스타일 변화를 되짚어보자.

영원할 듯 하던 콘솔 게임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PC게임이 세력을 확장한 데에는, 단순히 PC의 사양이 높아졌다는 기술적 이슈도 있겠으나, 굳이 게임기를 추가로 구입하지 않고 소프트웨어만 구입하여 플레이 가능하다는 간편함도 그 이유로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갖고 다니면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간편함이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이끌었다. SNS의 열풍을 타고, 소셜 네트워크 게임도 간편한 플레이뿐 아니라 친구 초대에 의한 간편한 회원 확장을 주 무기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간편하다는 것은 게임 내적으로 보면, 짧게 나누어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쪽의 시스템 변화로서 이어져갔다. 한번 시작하면 몇 시간을 붙어 있게 되는 MMORPG는 하드코어 유저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었고, 점심 식사 후 몇 십분 내에 한판이 가능한 전략 시뮬레이션, MO 게임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몇 십분 조차도 한판으로서 길게 느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요즘 카카오 게임의 열풍이 심상치 않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몇 분 내에 플레이를 마칠 수 있는 간편한 게임 플레이로 구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버스 기다리면서 한판, 전철 안에서 한판, 화장실에서 한판…, 이러한 플레이 패턴이 가능한 게임들이다. 카카오톡의 강력한 커뮤니티 기능과 연결되어 앞으로도 이렇듯 심플한 네트워크 연동 퍼즐 류의 강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어디서나 (Anywhere)’, ‘언제든지 (Anytime)’, ‘누구나 (Anyone)’…, 게임 역시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그 문턱을 낮추며 변화해 왔다. 옛날의 게임에서 즐기던 그 맛을 요즘은 느낄 수 없다고 개탄하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달갑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며칠 밤을 새워 하나의 목표를 달성해 냈을 때의 뿌듯함, 수십 명이 모여서 수백 번씩 죽어가면서 도저히 잡기 불가능해 보이던 보스 몬스터를 결국 눕혔을 때의 전율을, 요즘 게이머들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해 줄 것인가.

어쩌면 고전 게임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깊이 있고 작품성 있는 명작 게임의 재미를 만인이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창문을 통해 비 오는 들녘을 고즈넉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삶의 여유인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고 뉴스를 장식하는 잔인한 사건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현란함으로 가득 찬 세계, 뒤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야 하는 숨 가쁜 일상, 여기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 자기 자신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고 싶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길을 오가는 수많은 이들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열고, 뿅뿅 소리와 함께 1분의 간편한 즐거움에 몸을 맡긴다.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아니, 우리가 이런 사회를 만들어 온 것이다.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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