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자 하면 한결 같이 손사래를 친다. 게임계의 현안이 됐든, 아니면 게임 이야기가 됐든 자신의 이름으로 지면에 회자되는 데 대해 아주 예민하게 생각한다. 산업계 기사에 익명이 자주 등장하고 이니셜이 인용되는 것은 다 그 때문이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담겨 있는 듯 하지만,  실은 자신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싫다는 뜻이 더 강하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것 저것 참견하지 말고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냉소적 분위기가 산업계 전반에 팽배해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위험 부담이 큰 산업인데, 남의 일을 두고 ‘콩 놔라 팥 놔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느냐는 식이다. 결국 남에게 묻은 재를 탓하지 말고 자신이나 제대로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다는 산업과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거나,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 일선에서 대외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들 조차 하나같이 회사의 대표보다는, 회사의 대표작만 언급하려고 한다. 아무개 기업 대표의 경우 자신의 이름이 게임과 연결해 거명되는 걸 아주 창피하게 생각할 정도로 기피한다고 한다. 그래서 슬그머니 부문 대표제를 만들어 정작 자신의 이름을 지우기도 한다. 필요에 의해 부문대표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업체들로서는 아주 황당한 일이겠지만, 그런 편법을 쓰는 기업과 기업인이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업체이니까 당연히 게임을 우선해 홍보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게임 외는 그 무엇도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의 일방향 홍보의 함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솔직히 게임은 몰라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과 그 기업 대표를 알면 대충 그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게임인지 안다. 왜냐하면 게임도 다름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게임인을 제쳐두고 게임만을 논하자는 것은 본질을 제쳐두고 가지만 논하자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산업의 명예가 실종됐고, 게임인으로서 자긍심과 권위와 품위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짧은 산업 역사로 기인한 것이라며, 원인의 배경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같은 견해에 대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적절한 분석은 아닌 것 같다. 분명, 스스로 이건 아닌데 하면서 그렇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존엄의 상실이 안겨다 준 현상임에 틀림없다.    

 언필칭, 게임을 명실공한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게임인과 기업인 스스로 높은 도덕성과 권위, 그리고 품위와 위상을 지켜내야 한다. 게임만 잘 만들면 예술로 승화될 것이라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자 오만이다. 
 애니메이션을 대중문화 예술의 경지로 까지 끌어올린 미야자키 하야오는 경제학도 출신이다. 그의 연출작은 이루 헤어질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미래소년 코난’ ‘루팡3세’ 그리고  그의 출세작인 ‘이웃집 토토로’는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들로 꼽힐 정도다. 그러나 그와 그의 작품을 떼놓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그는 자신을 철저히 낮추면서도 장인으로서의 긍지는 대단했다. 그는 특히 스스로 새로운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구도자처럼 그런 길을 걸었고, 주변에서는 그같은 그를 존경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조 격인 월트디즈니는 만화 영화에 음향을 넣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후 그가 음성과 음악을 삽입해 만든 처녀작 ‘증기선 윌리호’ 는 당시 극장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때 태어난 캐릭터가 바로 미키마우스였다. 
 그는 이후에도 자신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일에 대한 집념 또한 대단했다. 무려 48개 아카데미상과 7개의 에미상을 수상했는데, 이같은 기록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디즈니는 이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얄팍하고 건방진 태도다. 어느 한 개인이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다”   
 장인 정신과 이웃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 그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일, 이런 것들이 살아 숨 쉬듯 산업을 이끌어야 명예가 생기고, 그 토대 위에 만들어 진 것들이 예술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것은 단지 상품일 뿐이며 더 나아가서는 사행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질 뿐이다. 이런 것들만으로는 결코 사회로부터 존경받을 수 없고, 예술이란 이름을 얻을 수 없다. 
 게임업계에 과연 명예란 게 존재하는가. 그 마저도 아니라면 쥐꼬리 만 한 품위는 지키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이를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해가 기울어져 가기 전에 말이다. 

[모인 건국대 겸임교수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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