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야기 사건 이후 어언 6년, 게임이 요즘처럼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엔씨소프트가 갖은 난관을 헤치며 9번째 프로야구단을 창건하게 될 때에도, 넥슨이 상장하여 세계 5대 게임업체에 등극하고 한국 주식 부호 3위가 뒤바뀌었을 때에도, 이 정도의 이슈가 되지는 못했던 듯하다.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 게임의 주인공처럼 난폭하게 변해버렸다’는 모 방송사의 해프닝은 그 시작에 불과하였다. 설마 정말 시행될까 반신반의하던 셧다운 제도는 기어이 작년 11월부터 시행이 되었고,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는 여가부와 협의하여, 연 매출 300억 원 이상의 업체에 한해 선택적 셧다운제가 적용되는 내용이 포함된 게임법 개정안을 발효시켰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는 게임을 유해요인으로 지정하고, 쿨링오프제도(게임 시작 후 2시간이 지나면 자동 종료)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일본에서 게임개발자는 존경을 받고, 서구에서도 게임개발자는 엔지니어가 아닌 크리에이터로서 자부심을 갖고 지낸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지면을 장식하는 게임 관련 뉴스를 보면, 한국에서 게임개발자로 살기 위해서는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수치심에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해야 할 형국이다. 문화수출역군이라 칭송 받으며 세계를 선도하던 온라인게임 강국이란 미명은 어느덧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한국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물론 중국이라 하여 규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진흥’과 ‘규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 중에서 일단 ‘진흥’에 방점을 두고 규제를 보완해 나가는 기조이다.


아는 이들 중에도 중국에서 게임개발을 하고 있는 한국 개발자들이 다수 있다. 그들도 알고 있다. 더 이상 중국 개발자들에게 전수할 기술이 없다고 그들이 판단하면 자신은 여지없이 내쳐질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한국 개발사에서 몇 년은 힘들게 고생해야 모을 금액이 거기서는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현실이, 고급 기술을 해외에 유출한다는 도의적 비난 정도를 충분히 감수하도록 그들을 내몰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한국이 게임개발자를 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다.


개발사들의 분위기도 유사하다. 돈 많은 회사는 외국에 상장하여 살 길을 찾아나갈 수도 있겠고, 대형 퍼블리셔는 한국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 시장의 개척에만 열을 올릴 것이다.


게임이 학생에게 유해한가 아닌가, 현 상황이 게임업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 아닌가 등의 논의는 워낙 여러 곳에서 다루었으니 굳이 여기선 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을 되새겨 보면, 최소 지금의 학생들보다는 더 뛰어 놀았고, 공부와 관련 없던 책도 더 읽었으며, 한편으론 더 방황할 수도 있는 ‘여가’가 주어졌던 듯하다. 굳이 게임이 아니라도 좋다.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여가생활을 보내게 할 날이, 과연 한국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게임산업이 과거의 한국 만화산업과 같이 피폐해지고 나면, 다음 타깃은 TV나 인터넷이 되지 않을까?


언젠가 내 아이가 자라, 내가 만든 게임을 플레이 해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주위에 말하곤 했었다. 한국의 게임개발자들이, 내가 가졌던 그 소박한 꿈을 다시 꿀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 게임개발자로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진 않더라도 최소 부끄럽진 않을 날이, 정말로 다시 올 수 있을까?

 

[김정주 노리아 대표 rococo@noria.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