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민간 국제게임대회 주관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시의 일이다. 2002년 초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현지 행사의 축사자로 오게 되어 행사 기간 중 같이 식사할 기회가 생겼다.

 

행사가 끝나고 열린 만찬 중에 필자는 용기를 내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게임대회라 하면 이 방면에 앞서 나가고 있는 한국에서도 아직 애매한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일국의 장관으로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것이 부담 되진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주 단호하게 다음과 갈이 답변했었다.

 

“나는 나의 자녀들을 통해 게임이 IT의 게이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게임을 통하여 IT를 접하고, 소통하고, 배워가더라. 어차피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생각을 바꿔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고 커 나가도록 기성세대나 정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따라서 게임대회를 스포츠로 육성하고자 하는 귀 대회를 후원하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당연하며, 또한 아주 자랑스럽게 이곳에 나왔고, 앞으로도 e스포츠가 보다 밝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해 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그 당시, 이분만큼 e스포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필자는 이 일을 계기로 e스포츠의 미래에 보다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의 노력의 결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전 태백에서 개최된 2011 IeSF 성화채화식에 참석했던 말레이시아 협회장이 자랑스럽게 말레이시아에 최초로 건설된 e스포츠 스타디움이라 설명하며 보여주는 사진에 남다른 감회가 밀려 왔다.


문득 떠오른 그 일로 인해 지금 나의 처지나 태도를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일한 길을 가더라도 확신에 차서 가는 것과 주저주저하며 가는 것에는 그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론 e스포츠의 경우 아직 1차 목표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본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초기에 기대했던 풀뿌리 e스포츠나 아마 대회 활성화는 냉정하게 아직 간도 못 봤다. 차기 목표를 세워 향후의 방향을 잡고자 해도 1차 결과물이 나와야 그 성과를 따져 보고 보다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2차 목표가 수립될 텐데 답답한 면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향후 조금 더 완성도 높은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답을 마련해야 한다. 유럽의 대부분 회원국들은, 물론 현재 우리와 협력해 모든 일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그 중 일부는 답답한 사안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답을 찾을 기세다.

 

함께 만들어 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큰형님으로서의 체면 및 향후 주도권 경쟁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핀란드 등의 북유럽국가나 일본 등은 현재 e스포츠협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IeSF의 가입을 미루고 있다.


대한민국의 e스포츠 스타디움이 현재 상암동에 건설 중이며 2012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규모도 세계 최대이며 이런 규모로는 세계 최초라 듣고 있다. 물론 e스포츠에 있어서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e스포츠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이를 뒷받침할 모든 구성원들의 치밀한 협력일 것이다.  2012년 e스포츠스타디움이 완공되는 시기에, 전 세계에 확실하게 대한민국이 e스포츠의 종주국이고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경험과 노하우)면에서도 자타공인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9월초 중국 출장 시 중국체육총국 인사에게 들으니, 상해 부근 상주에 6000평 규모의 대규모 e스포츠 스타디움을 금년 5월1일 개장하였다고 한다. 구체 내용을 확인해 볼 일이지만 사실이라면 이미 하드웨어 경쟁은 최초(말레이시아) 그리고 최대(중국) 모두 물 건너 간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오원석 국제e스포츠연맹 사무총장 wsoh@ie-s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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