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에 대한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더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한 때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에는 e스포츠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10만여 관중이 운집했다. 그래서 지금도 광안리라고 하면 e스포츠의 성지로 까지 불린다.

 

경기가 열릴 때면 인산인해를 이뤘고  e스포츠계 최고의 스타 임요환은 학생 팬 클럽 뿐 아니라 남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오빠 클럽까지 만들어 몰고 다녔다.

 

대기업들의 참여도 러시를 이뤘다. 삼성· SK그룹 등이 잇달아 게임단을 창단했고 이에따라 약간의 연봉 차이는 있긴 했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병역 의무를 고려한 정부 정책 지원으로 사상 최초의 군 프로 게임단이 창설됐고, 해외에서는 한국의 e스포츠 산업을 배우기 위해 앞다퉈 스포츠 관계자들을 파견하는 등 한국을 단순히 정보기술(IT)강국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못난이’ ‘미운오리 새끼’인 줄만 알았던 게임이 나라 안으로는 청소년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고 있으며,  나라 밖으로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껏 높이게 될 줄은 솔직히 아무도 몰랐다.

 

미국과 중국 등이 대한민국의 e스포츠를 벤치마킹을 하고 그 여세로 한국에서와 똑 같은 바람을 자국에서 일으킬 줄은 솔직히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바람은 계속됐고 농구 야구 축구 등 인기 스포츠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대한민국에서 e스포츠를 누가 모른다 했던가 할 만큼 e스포츠의 기세는 등등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2011 대한민국 서울 가을’.  대한민국 e스포츠계엔 그런 열기를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열기가 싹 가셨다는 표현이 맞을 터이다. 마치 시들어가는 가을 낙엽처럼 자신의 몸을 하나 둘씩 땅에 내려놓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어찌하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저변 확대에 반해 종목이 따라주지 못했다. 말 그대로 고작 ‘스타크래프트’ 하나로 연명했다. 온라인 게임 강국에다 다양한 게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음에도 종목 다양화에 게을리 했다. 팬들의 식상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또 한 겨울, 꽁꽁 얼어붙은 e스포츠계의 발등에 찬물을 끼얹는 선수 승부조작 사건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대중들의 반향 등 인기도를 고려했으면  그럴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충분히 방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e스포츠계, 관련 협회는 이를 막지 못했다. 일벌백계를 하고 관계자들은 팬들에게 석고 대죄해야 했음에도 이를 어물쩍 넘겼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요약하면 일을 저지른 그 선수의 잘못이 아닌가 였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현실 감각이었던 셈이다.


 스포츠계에서 조작은 곧 멸문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두번다시 팬들 앞에 설수 없다는 뜻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임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당사자들 외에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단의 하일라이트는 스타크래프트 개발사인 블리자드의 뜬금없는 저작권 공세였다. 마치 e스포츠의 종말까지 각오한 듯 달려들었다. 짧은 얘기를 길게 했고 간단한 문제를 얽히고 설키도록 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 막은 것이다. 팬들과 협회· 선수들은 지쳐만 갔고, e스포츠 관련업종들은 덩달아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다 블리자드 한국법인은 언로를 농단하기까지 했다. 게임계 언론은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양분돼 있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담당 홍보 마케팅 스탭들은 요지부동이다.


 게임계에선 지금 e스포츠계를 계륵에 빗대 말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게임을 대변하기 위한 논리의 틀로 e스포츠를 자주 언급하며 사용해 왔다. 과몰입, 사행성 등의 문제점은  있지만 스포츠로서도 자리매김하지 않고 있느냐는 논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마저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한숨이다.

 

그렇게 해봐야 블리자드만 배불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겠다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한 고위층은 “e스포츠계를 살리긴 살려야 하는데 뚜렷한 명분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명분을 달라는 것이고 블리자드가 그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리긴 쉽지만 만드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히틀러의 괴팍스런 궤변이긴 하지만 그는 파괴를 해야만 건설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e스포츠를 외면하기엔, 그리고 이를 그대로 묻어두기엔 너무나 아까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새로 쓴다는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스포츠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이미 알고 있으니 더 가볍고 쉬운 출발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전제는 있다.  원인을 제공한 쪽에서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협회가 살림을 새롭게 꾸렸다. 새 부대로 시작해 보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블리자드의 차례다. 핵심 사안과는 별개로 산업계의 분란을 일으킨 사람은 물러나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마저 거명하고 싶은데  추할  뿐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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