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 문인 단체 회장인 K시인의 주도로 몇몇 작가들과 백두산을 다녀왔다. K시인을 빼고는 거의가 초면인 작가들은 언론인과 관련 공직이 대부분인 필자의 이력 말미에 있는 ‘게임물등급위원장’에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첫날 저녁 인사 교환이 끝난 뒤 점잖게 시작된 작가들의 말투는 시간이 흐르고 술이 좀 거나해지면서 점차 거칠어지고 시비조로 변해갔다. 게임에 관한한 완전 왕초보 수준인 그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단편적으로 습득했을 법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미소를 잃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하며 ‘말이 안되는’ 비난에까지 성심성의껏 답변하고자 했다. 평정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거친 언사와 일방적 논리로 게임을 매도하기에 이르자 작심하고 설전을 벌이게 되었다. 자정을 훨씬 넘기고 악수와 함께 헤어질 때는 약간 어색함을 느낄 만큼 이날의 설전은 신랄했다.


쉽게 잠들 수 없었다. ‘110억원의 마늘밭’, ‘도박판 온라인게임’, ‘바다이야기 파문’, ‘청소년 게임중독’, ‘묻지마 살인’, ‘깍두기(조폭)들이 설치는 세상’, ‘정보 흘리고 돈먹는 경찰과 단속반’….


감성적으로 순수하고, 세상 일에 비교적 공정한 판단력을 갖고 있으며, 게임에 관해 보통사람들보다 특별히 나쁜 선입견을 가질 리 없는 작가들이다. 그런 이들의 입에서 왜 그리 신랄한 단어들이 손쉽게 튀어나왔을까? 게임에 대한 그들의 인상 비평은 신문과 방송 제목인 몇몇 표현에 다 들어있다. 곰곰히 생각해볼수록 예삿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고, 영혼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작가들 아닌가? 게임계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너무 억울하고 걱정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공자 같은 성인이나 칸트 같은 대철학자조차도 자신의 동네나 고향에서는 무시당한 경우가 많다. ‘용한 무당도 한 백리쯤 떨어져 있어야 찾는다’는 말도 있다. ‘가까이 있는 보배’를 그만큼 잘 몰라준다는 얘기다. 국내에서의 인식과 정부 정책을 보면 게임이 영락없이 그런 경우이다. 이처럼 왜곡된 인식과 죄악시된 이미지가 낳는 결과는 셧다운제 입법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그러면 이제 어쩔 것인가?


필자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작가들에게 게임 관련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챙겨 보내드렸다. “김제 마늘밭 하나에 불법도박사이트 수익금 110억원이 묻혀있었는데, 전국 곳곳에 얼마나 많은 불법사이트 자금이 묻혀있겠소”라는 그들의 질문에 어떻게든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중독 중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유학을 다녀온 게임중독 청년이 길거리에서 묻지마 살인을 했는데 게임과몰입은 문제가 없다는 말이냐”는 힐난에도 최소한의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전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시인, 소설가, 희곡과 시나리오 작가, 방송작가, 그리고 기자들을 일차 대상으로 ‘게임학교’를 열어 게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필요하면 가르쳐 주자는 것이다. 정작 몰라서 엉터리로,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은 점차 확대하면 된다. 당장에는 문학작품과 각종 대중예술 및 언론보도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이들의 게임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게임계에는 인재가 많다. 게임문화재단이 주도해서 머리를 맞대보자.  멋진 커리큘럼을 갖춘 ‘게임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기만 군산대·우석대 초빙교수 kimkey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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