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처음 불을 발견하고, 음식을 먹고, 따뜻한 동굴에 앉아서…, 즉 모든 의식주가 해결되고 나서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최초의 미술작품인 ‘낙서’가 아닐까. 구석기 미술작품으로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메머드와 소, 사슴 등 자신이 잡고 싶은 또는 잡은 동물들을 그려놓은 일종의 낙서일 것이다. 아마도 구석기 시대의 그 사람은 본인의 낙서가 ‘벽화’라고 불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냥 즐긴 것뿐이니까. 하지만 이런 즐거움의 추구가 문학이 되고, 미술이 되고, 예술이 됐다. 그리고 게임이 되었다.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이지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명제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냈다. 그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인간의 본질은 놀이라는 개념이다. 호모 루덴스는 유희의 인간을 뜻하는 용어로 문화사를 연구한 호이징가라는 학자에 의해 창출된 개념이다.

 

여기서 유희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는 뜻보다는 유희를 추구하다가 나오게 되는, 정신적인 창조활동을 가리킨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다양한 창조 활동을 전개하는 학문, 예술 등이 인간의 전체적인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조금 복잡한 내용으로 들어갔지만, 인간의 발전을 이루게 된 문화는 결국 놀이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문화를 표현하는 영화, 연극, 미디어 등은 다른 쪽에서 생각해 보면, 속된 말로 ‘쓸데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없어도 우리는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놀고자 하는 욕심이 예술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고 놀라운 부가가치를 만든다.

 

선진국의 기준 중에는 경제 수준보다는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높은 것이 더 크게 작용을 하는 것도 인간의 피에 흐르고 있는 문화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게임이야 말로 원래 문화 발전의 원동력인 ‘놀기 위한 목적’에 딱 들어맞는다. 멋진 그래픽, 높은 기술 수준의 프로그램, 감동을 주는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하며 본질적인 것은 오직 ‘즐겁게 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과 게임 산업을 보고 있는 정부나 사회의 시각은 일차원적이고, 너무나 단편적인 것 같아 씁쓸하다. 게임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게임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고, 게임 때문에 자녀들과의 대화가 단절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근거없는 주장들이 원색적인 용어들과 함께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되고 뉴스에 등장한다. 결국 [셧다운제]는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모 정부 부서에서는 게임사들에게 수익의 일정액을 강제로 걷어야 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 미국 국립예술기금에서 게임을 예술로 포함시켰다는 내용이 있었다. 게임 제작자가 화가, 예술가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예술로 국가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2윌에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문명4>의 OST(Original Sound Track)가 2관왕을 차지했다. 이것을 계기로 그래미상에는 ‘게임음악’ 이 정식 섹션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매년 정부에서는 문화산업 육성책을 발표한다. 그리고 게임은 문화산업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들어가 있으며, 3대 강국 운운하며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사업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소년 유해산업으로 치부하며 제제를 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게임을 돈만 버는 산업으로만 봐주지 않길 바란다. 게임은 이미 종합예술로 평가받고 있고 문화산업의 가장 발전된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사운드, 영상,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문화와 첨단 정보기술이 융합되어 있으면서도 상업적으로도 가능성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 바로 게임이다. 게임을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진정한 하나의 문화로 봐주는 시각이 없다면 지금까지 이룬 한국 게임계의 발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대웅 한국게임학회 회장 rhee219@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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