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셧다운제 시행 결정은 게임계의 현실과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내각의 한편에선 안된다며 게임계를 감싸 주긴 했지만 그건 절대 안된다며 강력히 반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원칙보다는 감정에 앞서고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판을 갈라놓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할 소지가 높고, 정치권의 입김 또한 더욱 더 커져 결국에는 또다른 악법을 만들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수출 역군에다 고용 창출에 나름 일조를 하고 있는 게임계가 과학적 근거는 커녕, 객관적인 자료 하나 없이, 비행 청소년들이 끼고 사는 게 게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임을 틀어막아야 겠다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의 목소리에 그대로 발목이 잡혀 버린 것이다.

 

게임계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다 못해 분통이 터질 일이다. 산업계의 위상은 온데 간데 없고, 게임계를 마치 사회악의 근원인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시선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울화가 치밀기 보다는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임계가 그만큼 치밀하지 못했다는 것과 함께 다른 유사 업종과 유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번에 셧다운제 도입을 관철시킨 시민단체는 솔직히 몇개 단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은 연대 서명을 통해 무려 40여 단체를 끌어 모았고 이를 자신들의 최대의 무기로 활용했다.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들은 과몰입 폐해를 막기 위한 셧다운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갖다 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은 유관 단체끼리 똘똘 뭉친 연대 의식과 그들다운 큰 목청이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들에게 적극 협조한 정치권이 시민단체 하면 아주 심하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온 여당인 한나라당이었다는 점이다.

 

그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게임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커 왔기 때문에 실용정부가 상대적으로 박대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웃지못할 소리까지 나왔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소리에 귀가 쏠리고 게임계 마저도 그런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형국이면 정부는 이 문제를 그냥 웃고 넘길 게 아니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일부 시민단체의 밀어붙이기에 반해 게임계는 외로운 싸움을 했다. 정치권, 특히 여당 쪽 마저 문전박대를 해 댔으니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싶다. 그렇지만 전략도, 나름의 방어논리 프레임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은 크나큰 패착이었다. 상대의 패를 뻔히 들여다 보면서도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은 책임을 방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부랴 부랴 방어 논리를 만든 것은 세련되지 못했고 설득력도 얻지 못하는, 사후 약방문식의 대응으로만 비춰졌을 뿐이다.

게임계는 또 이번 사태를 통해 변변한 우산조차 갖추지 못한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냈다.

 

몇몇 단체와 시민기관 등에서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 대상이 태생적으로 유사한 정보통신(IT) 분야였고, 그 마저도 대중적인 지명도와는 거리가 먼 단체였다. 뒤집어 보면 게임계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고립돼 있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와는 별개로 게임계가 상대적 논리 강세에도 불구 반대쪽 진영에 끌려 다니는 등 고전한 것은 게임계의 논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때문이다.

 

게임계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논평과 사설이 전무하다할 정도다. 더게임스가 유일하게 매주 게재하는 수준이다. 이는 잘 잘못을 제대로 가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변변한 저널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결함을 알면서도 그때 그때 시정하지 않는다.

 

게임계가 그렇게 하다가 세상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됐고 그러다가 셧다운제라는 크나큰 악재를 불러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관측일까. 게임계의 논객을 키우지 못하면 게임계의 중심도, 주장도, 생각도 알릴 수 없다. 또 객관적인 입장에서 게임계의 목소리와 논리를 받쳐주거나 설명해 줄 수 조차 없다.

 

그럼에도 게임계는 업계 저널지를 키우려 하지 않는다. 그 곳은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임에도 돈 버는 데 보탬이 안 된다는 단순 논리에 함몰돼 외면하고 박대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과 미국 산업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론 게임계의 위상만 주장하고 강조할 게 아니라 그 규모에 걸맞은 역할과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행동과 양식은 보통 격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업종과 산업에도 격이 있다. 그동안 게임계는 그런 격을 만들어 가는 데 대한 노력에 소홀했다. 아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해선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 상응하는 역할과 기여를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받아 들여지거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혹여 셧다운제 도입이 게임계에 던져진 세상사람들의 괘씸죄의 돌이 아닐까.

 

게임계가 이젠 위상만 주장하고 강조할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옷도 갖춰 입을 때가 됐다. 안타깝지만 셧다운제란 주홍글씨를 벗겨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하나하나씩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본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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