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장마철 답지 않게 꾸질꾸질 비가 내리는 광화문 네거리. 그 곳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배우들이 다 모였다.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움직임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모여 궐기 대회를 갖기로 한 것이다.

 

이날 대회에는 안성기 박중훈 등 스타급 배우들을 포함, 무려 3 백여명의 영화인들이 참석했다. 꾸질꾸질하게 내리던 비는 대회가 절정에 이르자 어느 새 장대비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대회를 마치고 이들은 가두 행진을 위해 드레스 코드 대신 오렌지 색 운동권 조끼를 걸쳐 입었다. 이조끼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사수 스크린 쿼터,! 쟁취 문화 주권’


배우들의 스크린 쿼터 수호 궐기 대회는 불과 한시간여 만에 이렇게 마쳤지만 이들이 사회를 향해 던진 행동적 메시지와 상징 효과는 매우 컸다. 개성이 강해 아무리 애를 써도 모래처럼 뭉쳐지지 않는다는 배우들이 그 것도 수많은 팬들 앞에 머리띠를 두르고 나섰다는 것은사안의 긴요성도 그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뭉칠 수 있다는 배우들의 동지적 관계를 이 사건을 계기로 명징적으로 보여줬다는 데 큰 의미를 안겨줬다.


정부는 다음날 배우들의 궐기 대회에 대한 답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스크린 쿼터 축소 계획은 잘못 알려진 것이며, 정부는 그런 일정 및 계획를 갖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는등 화답했다.


2011년 4월, 아침 저녁과 낮의 기온차가 심했지만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이날 국회 법사위에서는 게임 셧다운제를 골자로 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본회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사실상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은 통과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따라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심야 시간대의 경우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 법률 개정안은 실효성 여부를 떠나 교육 목적상이라고 토를 달고 있긴 하지만 청소년들의 행복 추구권을 정부가 강제하고 제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위헌 논란의 소지가 크다.

 

그렇지만법률 개정안 추진을 물밑 지원해 온40여 시민단체 연대는 일제히 환영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를 계기로 청소년 보호를 위한 더 강력한 법률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시민단체들이 또한번 똘똘 뭉친 것이다.

그 시각, 게임계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논평조차 내지 못했다. 게임계 입장에서 보면 주홍글씨가 심어진, 성상 이래 가장 수치스러운 날 임에도 불구하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도, 의견도 없다. 마치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부닥치는 일이 아니니까 서로 상관 없다는 투다. 세상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데도 별 반응이 없다면 이를 정치적 감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러든지 말든지 별 뜻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인가. 이것이 다름아닌 대한민국 게임계의 현 주소이자 현실이다.


산업계를 위한 단체 행동이란 걸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분오열된 게임계를 세상사람들이 뭐라 하겠느냐며 행동 통일을 주문해 보지만 먹혀들지 않는다. 아니 소용이 없다. 그 때문인지 타 업종 사람들도 게임계의 개인주의를 아주 놀라워 한다.


한마디로 그 것은 단거리 종목에만 줄을 댄업체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돈만 벌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한탕주의자들이 득실댄다는 말과같다. 그런 시정잡배들이나 노는 판에서 길을 닦고 돌을 고르라는 것은 마치 사치와 같다.


문제는 산업화를 꾀하고 엔터테인먼트의 한 지류로 편입시키려는 건전한 장거리 선수들의 행보 마저 이들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극단의 현상은 게임계가 심도있게 고민하고 연구해 봐야할 사안이다. 한탕주의자들로 인해 업계의 질서가 혼탁해지고 게임계의 미래 패러다임을 담보할 수 없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상당수 기업들 마저 보기에는 좋게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게임계 문화는 커녕 게임계 역사 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탕주의자들과 행동 양식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사회적 책임과 게임계의 업력을 키우기 위한 문화 창달의 힘과 그 필요성을 제기하면 딴 얘기만 쏟아낸다.


이런 형세, 이런 풍토에서 명예를 고민하고 존엄성에 대한 기치를 높이 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임계가 이제 옥석을 가려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자율적인 게 어렵다면 정화 시스템을 가동해서라도 피아를 구분하고 선수들을 가려내야 한다. 살과껍데기의 진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껍데기를 떼내는 아픔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게임계의 자리매김은 솔직히 요원하다 할 것이다.


언필칭 이렇다. 게임계를 위해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겠다는 이들,예컨대 자기 회사 수익만 극대화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이들, 또 게임계 문화는 생각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문화 활동에만 매달리는 이들, 산업 역사에 대한 두려움은 커녕 자신의 역사에도 두려움을 갖지 못하는 한심한 이들, 이런 이들은 반드시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게임계가 바로 설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업에 대한 명예는 커녕 게임계의 역사는 한갓 휴지조각 처럼 버려질 게 뻔하다.

이런 마당에서 인류 존엄에 대한 가치와 경외로움이 과연 생기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아닌 게임계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게임이 아닌 게임계의 현안을 언제까지 덮어두고 갈 것인가. 고름은 살이 될 수 없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