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칼을 들면 감동을 주는 요리를 만들지만 도둑이 칼을 들면 사람을 해친다’는 말이 있다. 칼이라는 도구도 누가 들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 칼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둡고 밝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게임계와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 오직 어두운 쪽 면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게임을 많이 즐기는 대상이 청소년이기에 민감하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은 게임학계와 산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지난 3월 16일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의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인터넷 중독 예방 기금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 토론회에서는 게임업계에 게임 중독 기금을 부담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게임업계 이익의 1% 수준인 2000억원을 중독 예방 기금으로 주장했다고 하고, 김춘식 경민대학 e비즈니스경영과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게임산업 매출액의 6%인 4000억원을 기금으로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김성벽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과장은 “기업이 소비자는 안중에 없고 돈의 노예가 되서는 안된다”고 지적했고, 권장희 소장은 “게임하면 짐승이 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너무나 일방적으로 게임의 역기능적인 면만을 고려한데다가, 중독 자체를 게임사에만 전가시키려는 발언과 방향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게임이 갖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게임은 컴퓨터과학, 심리학, 사회학, 인문학, 예술, 문학,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등의 다양한 학문분야의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며 세계적으로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게임이 가지는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여러 분야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기능성 게임에 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게임학회에서도 기능성게임 세미나를 매월 개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교육, 의료, 환경 분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이미 수년전부터 게임문화체험교실을 통한 건전 게임문화 운동과 기능성게임에 관한 중장기 계획에 관한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게임중독 기금에 관한 문제는 ‘게임은 나쁘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하겠다. ‘중독’이라는 용어는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원하는 내성과 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모두 나타나야 성립된다고 알고 있다.

 

아직까지 임상적으로 게임중독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고 입증되지 않았다. ‘게임중독’이라는 말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게임을 하면 짐승이 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게임이 나쁜 게 아니다.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정책을 가지고 슬기롭게 하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각도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때이다.


이런 저런 면에서 게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너무나 우리가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미 해당 뉴스가 나간 후로 게시판에는 매일 100여 개의 글이 달렸지만 게임계나 학계에서는 이렇다 할 공식적인 반응이 없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게임학회에서는 오는 29일과 30일 양일간 공주대학교에서 춘계게임학회 총회 및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공학적 상상력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연구자들과 개발자들이 모여 게임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다.

 

지금 한국 게임계에서 필요한 것은 꼭 필요한 때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업계와 학계가 협력해 진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진정 게임계의 미래를 여는 방법일 것이다.

 

[이대웅 한국게임학회 회장 rhee219@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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