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는 소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 가는 고마운 동물이다. 고대 중국에서 소는 제사지낼 때 없어서는 안되는 제물(祭物)이기도 했다. 제사에 관련되는 한자에 뿔이 돋은 소의 머리모습에서 나온 갑골문자인 우(牛)자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물로 소를 하늘에 바치고 이를 널리 알린다는 뜻의 고할 고(告), 제물이 된다는 의미의 희생(犧牲)이 그렇다. 특별하다는 뜻의 특(特 )자는 아예 제물로 바치는 수소가 남다르게 특별해야 한다는 데서 나왔다.


제물로 쓰일 특별한 소로는 상처가 없고 뿔이 균형있게 잘 자란 놈이 꼽혔다. 중국의 한 농부는 어느날 제사에 쓸 소를 살펴보던 중 뿔이 좀 어긋나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농부는 뿔을 바로잡아볼 요량으로 소를 단단히 묶어매다가 그만 소를 죽이고 말았다.

 

안타까울진 저! 결점이나 흠을 고쳐보려고 애를 쓰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경우를 가리키는 4자성어 교각살우(矯角殺牛)는 여기서 유래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촌철살인의 표현이다.


지난 16일 민생경제연구소 주최로 ‘인터넷 중독 예방기금 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가 열린데 이어, 18일에는 여성청소년미디어협회 주최로 ‘게임세상에서 우리아이와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토론회도 열렸다.


이어 18일 한나라당 한 의원이 주도한 기금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 바야흐로 게임중독과 관련한 논의의 열병이 이는 듯한 이 시기에 이번에는 일부 네티즌들이 셧다운제 발의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들고 나왔다.


그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셧다운제가 게임중독을 확실하게 줄인다는 어떤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근거도 없이, 게임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규정해 놓고 법을 통한 강제적 규제를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맞지 않고 산업계의 품격도 훼손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업계 자율규제에 맡겨야 하며, 그것이 이미 청소년 놀이문화로 깊이 정착한 게임이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저런 사건사고의 배경에 게임중독현상이 깔려있는 듯 하고(지극히 불확실한 추단이다),

 

게임이 청소년을 황폐화하고 있으니(여성가족부와 일부 논자들의 일방적 주장이다) 무조건 게임이용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는 청소년의 정체성이나 자유의지를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또다른 인권유린이라는 것이다.


낙선운동을 주장하는 네티즌들의 주장은 퍽 격렬하다. ‘게임=마약’이라는 식의 과장논리를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고, ‘게임중독은 영혼을 파괴하는 병’이라고 몰아붙이는 융단폭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16일의 토론회에서 발제자가 “지금 교실에는 뇌상태가 짐승같은 아이들이 있다”고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 이들의 격노에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도 게임에 과몰입해 자신은 물론 주변을 황폐하게 만드는 사례가 적잖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책의 필요성에도 동의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런 폐해를 줄이는 일에는 학교, 부모, 사회가 일차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이지 정부의 강제력 행사를 능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가부, 일부 국회의원과 게임평론가 및 학부모단체와 사회단체 등이 게임중독 근절을 내세우며 게임산업 자체를 범죄시하고 사회흉악범처럼 몰아세운 것이 오히려 일부 네티즌들의 집단행동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셈이다.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셧다운제 발의의원 명단’에는 21명의 이름이 보인다. 이 명단이 나오자 한 의원은 “이는 2009년에 관련법안을 발의한 의원들로 그 법안은 폐기된 만큼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3월18일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10명으로 낙선운동 측이 제시한 21명과는 사람도 숫자도 다르다.


이런 논란을 떠나서 ‘법안발의의원 낙선운동’ 운운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산업을 미래의 또다른 반도체, 확실한 블루오션이라고 확신하는 게이머와 산업관계자들의 충정이나 분노를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같은 운동은 전형적인 교각살우일 뿐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정교하고 조직적인 운동을 펼치는 게 필요하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에게 이메일, 팩스, 편지, 청원, 방문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선진국 어느 나라도 도입하지 않고 있는 제도,태국 중국 베트남 정도가 진통과 혼란 속에 쓰고있는 정책을 게임선진국 한국에서 무리하게 강제할 때의 더 큰 문제점을 차분하게 설득해야 한다. 힘들고 답답하고 느려터져 보여도 정도(正道)를 찾아 돌아가야 한다.


시간은 있다. 관련법안 심의가 일단 4월 임시국회로 연기된 만큼 낙선운동을 제의한 네티즌들이 한국게임산업협회, 게임물등급위원회, 게임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전문가 집단 등에 아이디어를 주고 가능하면 시간과 인력과 열정까지를 제공해서 일을 추진해보기를 권한다. 우리나라 네티즌운동 역사상 위대한 한 기록을 남기게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기만  군산대ㆍ우석대 초빙교수 kimkey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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