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정부의 정책기조 가운데 하나는 기업 친화에 두고 있다.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 마다 언급하는 것이 기업 활동에 저해된다면 전봇대를 뽑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서라도 기업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전봇대를 옮기는 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하겠지만 전봇대가 상징하는 것은 크다. 그 것은 단순히 불쑥 솟은 나뭇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산업 동맥의 기간망을 뜻한다. 기업들이 불편하다고 한다면 산업 핵심이 되는 것 조차 옮기고 바꾸라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자주 논란을 빚는 게 정부의 처방전이다. 사태를 처방하는 메뉴얼을 사전에 마련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지만 그 솔루션이 너무 낡았거나 재탕, 삼탕하면서도 신체 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마치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격을 얘기하고, 사회에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일정한 품격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후진적 처방에서 이젠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니냐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현안을 풀어가고 대응하는 정책은 미숙하기 그지없고,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정부 정책 입안자들이 국민의 의식 수준을 여전히 낮게 평가하고 있거나 ‘해도 된다’ 보다는 ‘해선 안된다’는 이른바 네거티브 정책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제역 처방전도 그렇고 병원선택 진료제 도입안 등도 그렇다. 좀더 세밀하게 다뤘다면 여론의 후폭풍을 맞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게임계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셧다운제 시행 등 게임에 대한 정부의 잇단 정책 방향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범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지능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들을 양지에서 키우고 성년이 될 때 까지 잘 보호해야 하는 것은 부모뿐 아니라 사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임과 청소년 범죄율을 등가의 법칙으로 내세워 재단한다면 그건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연말에 이어 올 초 일어난  강력 사건  가운데 사회의 이목을 집중 시킨 것은 청담동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이었다.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20대초 피의자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까지 게임을 즐기다가 갑자기 살의를 느끼고 집을 나와 일면식도 없는 길 가던 청년을 살해한 것이었다. 결국 게임에 몰입함으로써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게 됐고  끝내는 살인을 저지르게 됐다는 게 경찰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현상적인 분석이고 형식적인 살해 배경 설명이다.

 

그 피의자는 게임을 즐기기에 앞서 이미 정신병력을 갖고 있었고 그로인해 유학 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해 운둔 생활을 해 왔던 것이다. 게임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정적인 살해 동기와 배경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다른 충격적 사건인 어머니를 해친 한 중학생의 얘기도 앞서 언급한 묻지마 살인사건과 유사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피의자들의 성장 과정과 소외되고 삐뚤어져 버린 가치관 등은 그냥 내버려 둔 채  그 결과만을 놓고 게임의 역기능을 지적한 것이다.

 

게임계는 그래서 셧다운제 시행에 대해 이렇게 하소연 한다. “셧다운제가 제 몫을 한다면 백번 천번 수용하겠다. 그런데 선진국마저  외면한 방법을 굳이 한국 시장에 시도해 보려는 의도를 알 수 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셧다운제 시행의 법제화에 대해 게임계는 거의 수모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를 테면 이제 막 걸음을 떼고 달려 보려는 게임계의 가슴에 그 것도 기업을 부양하고 도와줘야 할 정부가 나서 주홍글씨를 심어 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시행하면 될 것을 꼭 법으로 이끌어 내야 속이 풀리는 게 네거티브 정책을 흠모하는 관료 집단들의 속성이다. 진정으로 필요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책임을 돌리기 위한 면피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런것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속성에 놀아나는 관리들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 하겠다.


다시 말하면 국격과 품격 마련에 어울리지 않는 관리는 커녕 말 그대로 복지부동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에 걸맞은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의 표상이라면 적어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도 틀어막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이 돼야 맞다.
지금은 ‘이것만 하고 다른 건 하지 말라’는 네거티브 시대가 아니다. 굳이 올라가겠다는 데 막으니까  산기슭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전봇대를 뽑아내고 옮기는 작업이 군부 독재 시대 같으면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그 것은 산업 기간망이며 산업의 근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불편하고 싫다면 옮겨야 하는 선진 시대다.


닫아 놓고 재단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다 할 수 있는 건 이 시대의 경쟁력이라 할 수 없다. 열어놓고 단속할 수 있는 게 나라와 사회의 힘이며 국격이고 품위다. 그게  바른 길이라면 험하고 힘들어도 가야 한다.


법제화를 통한 셧다운제는 네거티브 정책의 대표적인 부산물로, 절대로 시행해선 안된다. 그것은 나라의 국격과 사회와 산업계의 품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굳이 시행하려면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게  맞다. 그 것이 실용정부의 모토이자 산업계를 돕는 일이며 미래 사회를 열어가는 지름길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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