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통치 철학은 유교를 기반으로 했다. 숭유억불 정책은 이를 실현하려는 왕도 정치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쓰여 졌다. 문무 양반과 평민과 상인이란 계급 신분을 나누고 그도 모자라 적자와 서자라는 서얼의 구분까지 명확히 했다. 이로 말미암아 상공인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재물과 돈은 넘쳐 났으나 신분을 뛰어 넘을 수가 없었고 양반과의 금혼으로 양반 사위나 자기보다 지체 높은 며느리를 집안으로 들일 수가 없었다.  양반들은  그들 나름대로 재물을 모으는 짓은 천한 것이라며 천자문만 끼고 살았다. 쌀 곳간이 텅텅 비었어도 배고픔보다는 신분에 따른 위엄 지키는 일을 더 높게 봤다. 결코 섞일 수가 없었고  대립하는 가치의 이념을 서로 나눌  공간마저 없었다. 이같은 조선 왕조의 이데올로기는 안타깝게도 근현대사에까지 이어지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준다.


이념과 가치를 다룰 때는 쏠림 현상을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쪽으로 기울거나 몰릴 경우 극단적 현상이 일어나고, 상대에 대한 진정성을 곡해 또는 아예 무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지점에 있는 사람들을 극단주의자 혹은 극렬 주의자라고 하는 데 이를 사실상 동의어로 받아 들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쏠림의 현상. 이 것은 이념과 가치 뿐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도 결코 유익하지 않다.


게임계의  MMORPG (다중 접속 게임)에 대한 일방적이고도 맹목적인 편애현상은 심각할 정도다. 다른 장르의 게임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따라하기 식의 일방적인 구애는 안타까울 정도다. 티쓰리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이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유사한 작품들이 한때 시장에 러시를 이뤘다. 따라하기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앞뒤 좌우를 살펴보지 않고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따라하기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게임계의 이데올로기 쏠림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경쟁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리스키하고 성공 확률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가치와 그 최고의 선이 오로지 돈과 재물,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비즈니즈쪽으로만 모아 진다면 그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며 부정적인 현상이다. 산업엔 오로지 비즈니스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저 편엔 그 것과 견줄 산업계와 산업인의 명예가  숨쉬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산업에 대해 사회가 더 큰 명예의 무게를 요구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질인, 이른바 도박에 가까운 흥행적 요소 뿐 아니라 그들 구성원들의 면면이 사회적으로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할리우드 패밀리들이 끊임없이 사회에 손짓을 보내고 공인으로서의 높은 자질을 발휘하는 것은 생존적 본능 외에도 그래야만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당당히 돌려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돈도 중요하지만 명예가 그 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산업으로써 대우를 받고 사회로부터 이질적 집단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우상이 모인 스타들의 집단으로 떠 받들여 지는 요인이 바로 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 쪽은 제쳐두고 오로지 비즈니스 쪽으로만 달려간다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한쪽으로 쏠렸다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아무리 큰 배도  뒤집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파산을 의미하고 종말을 뜻한다.


산업은 비즈니스와 명예, 이 두개의 주춧돌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쪽만 존재하고 다른 한쪽이 비어있을 경우 그 산업은 속빈 강정이라 불리거나 아니면 투전만 즐기는 이들의 집단이라고 몰릴 수 있다. 건전한 산업일수록 양형의 사법부 저울처럼 산업의 저울도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명예를 먹고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게임산업 규모가 10조원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즈니스쪽으로만 함몰돼 있다. 몇몇 뜻있는 메이저와 중견기업을 빼 놓고는 그런 것에 대해 아예 안중에도 없다. 명예를 그저 호사가의 수식어 쯤으로 생각하거나 애초부터 그에 대한 관심 밖이거나 하는 그런 식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못지않게 명예를 먹고 살아야 한다. 특히 게임계는 태생적인 운명에 따라 그 부문을 더 눈여겨 보고 신경써야 한다. 우리 게임계는 제도권의 그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뒤처져 있고 사회적인 인식 또한 아주 일천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본지는 게임인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그들의 명예를 드 높이기 위해 ‘대한민국 게임인 대상’ 을 제정해  매년 연말 수상자를 가려 왔다. 그런데 올해는 안타깝게도 수상자를 낼 수가 없었다. 인물과 공적이 뛰어난 기업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공적자를 가려 상을 줄 수가 없었다. 무심한 것인지 아니면 명예만 안겨주는 그런 상은 싫다는 뜻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해마다 성원해 준 게임인들과 해당 관계자들에게 송구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진정, 우리 게임계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때 아니게 떠오른 명제가 오늘따라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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