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신묘년 원단 기획으로 준비한 ‘뉴 챌린저’ 면은 중소기업을 키우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굳이 ‘살리자’는 뜻을 접고 ‘키우자’는 것으로 제목을 붙인 것은 ‘살리자’는 그 뜻의 절박함과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식상함보다는 ‘키우자’라는 뜻에 내포된 수평적 관계 속에 함께 이룰 수 있는 동지적 관계의 의미를 더 높이 산 때문이다.

 

중소기업 하니까 낯선 단어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임산업계의 풍토로 보면 모험의 성격이 짙고 마치 폭풍처럼 거세게 몰아쳐 오다 잔잔해 진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용어인 벤처기업이란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단어의 의미를 슬그머니 버린 까닭은 좀 더 끈적끈적한 사람 내음과 오프라인의 정을 느끼고자 함이다.


 10여년의 성상을 쌓아올린 게임계가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대로 여전히 시니컬한 이유는 사업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보면 맞다. 주변을 살펴볼 여유조차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은 사치에 가까울 정도다. 그럼에도 경쟁사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이 없다. 경쟁사 및 상대를 깎아 내리기 일쑤이고 수많은 악성 루머들을 양산해 낸다. 청소년 게임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A사의 대외 협력 창구는 루머 양산의 본산이라고 불릴 만큼 평판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게임계의 표정조차 곱게 비춰지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나 타 업종 사람들과 만나 게임계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그 형상이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진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어떤 모습이냐고 하면 못난이 삼형제 인형 중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 얼굴. 바로 그  모습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시장 진입이 이뤄지고 있고  저 하늘의 별이 다 보일 만큼 허름한 사무실이지만 그 것도 싫지 않다며 달려드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황금궤를 캘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이 그대로 세인들의 눈에 비춰지게 됐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인재들이 잇달아 몰려와 산업의 외연을 풍요롭게 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재의 물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이내 가뭄의 콩나는 듯 하기 시작했다. 최근 1∼2년 사이 괜찮은 인재들이 모였다는 기업을 살펴보면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지난해 하반기 회사를 정리하고 산업계를 떠난 B 사장을 구랍 30일 모처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였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게임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으고 자신에 대한 인지도 또한 크게 높여 아쉬움이 없어 보일 것 같았던 그였기에 그의 반응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 졌다.  좀 더 비약하면 그의 표정은 아주 침통했다. 그  까닭은 그가 어렵게 입을 연 순간 이내 알게 됐다.

  그가 회사를 정리하고 게임계를 떠난 것은 절박한 피난처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는 먼저 퍼블리셔와의 관계 설정이 가장 힘겨웠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유통망을 검토했지만 이마저도 퍼블리셔의 방해로 어려웠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는데, 퍼블리셔쪽에서 마케팅 지원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그런 후 회사를 매각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는 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매출이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의 일이라고 그는 기억했다. 끝내는  손을 들고 말았다는 게 B사장의 설명이었다.


 외형적으로 보면 기업인수합병의 형태였지만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넘겨버린 것이다.


  메이저(퍼블리셔)와 중소기업(개발사)간 불협화음은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일부 관계자들은 한쪽은 삼키고 다른 한쪽은 먹히는 구조라며 퍼블리셔와 개발사의 태생적 관계를 설정해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함께하지 않는, 예컨대 왜곡된 기업시장 구조로는 산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부터 산업계에 나타난 뚜렷한 현상은 메이저사들이 개발사를 키워 파이를 키우기 보다는 유통 구조를 주물러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이즈음 스튜디오들은 동토에 내 던져지기 시작했고  개발사들은 자금 줄을 찾지 못해 아우성치는 형국을 맞이하게 됐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일부 메이저는 아예 퍼블리셔의 산업 책임론 마저 망각한 채 산하 개발사들을 저버렸다.  또 이를 지적하는 언로에는 채찍과 당근으로 재갈을 물리기 시작했고, 업계지에는 자신들이 쥐꼬리 만큼 보조해 주는 연간 광고비를 마치 은전이나 시혜를  베푸는 듯 거드름을 펴며 쥐락펴락했다.


 잔디가 곳곳에 깔려 있지 않으면  산야가 온전하고 푸를 수 없다. 아무리 큰 나무들이 있다한 들 홍수를 견뎌내지 못한다. 메이저를 받쳐주고 퍼블리셔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중소기업, 개발사들이다. 별개의 몸이 아니라  한 몸이라는 뜻이다.


 소한이 지났다는 것은 춘절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의미한다. 춘절은 봄이다. 화창한 새 봄을 맞이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동장군이 흩트려 놓은 안팎의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청산해야 한다. 이참에 알곡만 남기고 쓰레기 같은 껍데기들을 가차 없이 치워버릴 순 없을까. 그래야 중소기업이 키워지고 산업이 튼실해질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더게임스 편집국장 모인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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