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출범 시기,  산업별 기능별 역할을 둘러싼 부처 간 힘겨루기는 예상보다 치열했다. 그 가운데 게임을 비롯한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소관 부처 문제를 놓고 벌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정보통신부의 신경전은  또다른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콘텐츠는 정보통신부가, 문화콘텐츠는 문화부가 관장키로 교통정리가 됐지만, 이후 이같은 어정쩡한 유권 해석은 양부처가 끊임없이 영역 다툼을 벌이게 되는 빌미가 됐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게임은 문화부가 맡게 됐다. 정부의 업무 분장 이전부터 게임산업 정책에 깊숙히 개입, 나름 기득권이 있다는 점이 작용했지만 대외적인 명분은 게임이 디지털 콘텐츠 영역이 아닌 문화 콘텐츠 영역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이때 당시, 게임계의 반응은 심하게 갈려 나타났다. 한쪽은 산업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위해 잘된 결정이라고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콘텐츠산업 융합에 유기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며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특히 정보통신부쪽으로 편향돼 있던 모바일 게임업체들의 반발은 거셌다. 게임의 태생적 기반만을 놓고 볼때 통신쪽에 가깝다는 게 그 이유에서다. 그 때문인지 몇몇 업체들은 끝까지 '항거'하며 문화부와 일정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계의 우려와는 달리 문화부의 게임 애찬론은 그러나 생각 밖으로 당찼다. 마치 게임계의 반응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이틀이 멀다 할 정도로 산업 육성책과 미래 청사진을  쏟아냈다.


이즈음에 부임한 박지원 문화부 장관(현 민주당 원내총무)은 문화부의 장미빛 청사진을  반드시 구현해 보이겠다며 불철주야로 뛰어 다녔다. 문화부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정부 예산의 1%를 돌파한 게 바로 이때였다. 그러자 산업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고 그 실현 가능성이 어둡다던 게임산업 개발원(이후 게임산업진흥원)이 출범하게 된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이 제정되고  한편에선  대규모 게임 펀드가 정부 주도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장관은 연일 지식산업의 가치를 강조하며 게임산업 육성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다녔다. 게임 수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게임계로 진입하려는 기업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게임계가 기지개를 켜고 쾌재를 불렀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실용정부 출범 초기. 이명박 정부의 슬림화 정책으로 부처가 잇달아 통폐합되고 역할과 기능별로 산하기관의 통폐합이 단행된다. 국민의 정부이후 10년 만에 바뀐 보수정부의 출범을 바라보는 게임계의 표정은 의외로 평상심, 바로 그 것이었다. 부처가 통폐합되고 산하기관의 수평적 결합이 단행돼 게임산업진흥원이 콘텐츠 진흥원으로 흡수 통합된다 하더라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이명박정권이 실용정부라는 것을 정책 지표로 삼고 지식산업, 특히 콘텐츠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뜻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밝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는 실용정부 출범 시기와 걸맞지 않게 엇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는 세계 경제를 급격히 냉각시켜 한국경제를 마구 뒤흔들었다.수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달러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이때 경제· 산업의 루키가 된 것은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였다. 이들은 수출시장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줬고 특히 게임은 무려 15억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고용 증대에도 큰 몫을 담당했다. 제조산업 못지않게 고용증대 효과가 큰 지식산업의 가치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지식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게임은 고부가 가치 등 경제적 효율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자원이 빈곤한 대한민국 경제에 최적의 조합을 이룰 수 있는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게임계의 표정이 최근 낙담과 한숨으로 얼룩지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된 듯하고, 민관의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상 단절됐다고 단언하는 듯 하다. 그 근거로 문화부의 게임법과 여가부의 청소년보호법의 괴리에서 산업계가 아무 것도 못했다는 자괴감보다는 철저히 따돌림 받고 소외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산업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법의 개정안을 공청회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 그 것도 어떻게 서로 나눠먹기식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게임계는 또 업계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산업의 자양분이 되는 각종 게임 시상제의 폐지 방침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예컨대 늘려도 시원찮을 판에 제정된 상마저도 뒤집어 버리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도대체 어떤 게 실용정책이며 어떤 개정 법률안이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한 것이냐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정부가  G20 서울정상 회의 개최를 계기로 나라의 품격을 새롭게 다지고 선진사회의 새로운 모델과 패러다임을 만들자고 야단이다.  맞다. 국격을 높이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의 위상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쪽에선 여전히 불법과 하향식 일방통행이 난무하고, 소통과 대화보다는 강권과 나눠먹기식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국격 높이는 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얘기다. 


더욱이 많은 국민들이 ‘아 옛날이여’ 하면서 옛 향수를 찾아 헤매이고, 과거의 시간으로 역사의 추를 되돌리려고 한다면 정부의 정책이 잘못돼도 한창 잘못됐다는 것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다 대통령의 기업 프렌들리 선언에도 불구, 여전히 기업들이 정부를 못 믿겠다며 등을 대고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 크다 하겠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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