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가 겨울 성수철을 앞두고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수요 침체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게임계 입장에서 보면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호기인 셈이다. 그런데도 업계의 표정이 밝지 않다면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어렵게 완성해 선보인 ‘뉴 페이스’들이 힘도 써보지 못한 채 퇴출되거나 밑을 기고 있는 반면 ‘올드 보이’들은 시대에 걸맞지 않게 기세를 떨치며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유저들에게 먹혀들고, 그들의 손이 탄다면 흰 쥐가 됐든지 검은 쥐가 됐든지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찜찜하다 못해 답답할 지경이라고 한숨이다.

 

대박 작품이 가뭄 수준을 넘어 거의 고갈 수준인 까닭이다. 지난 2007년 이후 시장에 선보여 대박을 터트린 작품을 꼽으라면 ‘아이온’ ‘오디션’ 등 몇몇 작품에 불과하고 그 작품 수마저도 한자리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요 메이저들의 자체 개발 히트작은 거의 가뭄에 콩나기 수준이고, 그 나마도 아웃 소싱을 통해 조달한 게 먹혔다고 할 정도다. 그렇다면 게임계에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개발자들의 수준이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배 부른 시인으로부터는 운율과 감흥을 느낄 수 없다고 한 것 처럼 개발자들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며 여치처럼 놀았다는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유저들의 눈높이가 훌쩍 높아진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무친 비빔밥처럼 고만 고만한 작품만 만들어 선보였기 때문일까.

 

여러 의문 속에서도 속 시원하게 피부에 와 닿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게임계가 어느 순간부터 춥고 가난했던 시절 배웠던 팀워크를 벗어 던져 버리고, 대화 등 소통을 통해 깨달았던 조화의 미덕을 독선과 아집으로 바꿔 소리를 높여 온 건 확실하다.

 

카리스마는 생겼지만 창조적 리더십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기업, 그런 개발 풍토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시장에서 먹혀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이자 과욕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표의 기업에는 오로지 순종 밖에는 눈에 비춰지지 않는다. 대화의 통로는 막혀있고 일방의 통행로만 있을 뿐이다. 생산적 비판에도 예민하고 회사보다는 기업 대표의 행보에 더 관심이 많고, 회사 비판보다 기업주 비판에 더 민감하다. 상명 하달식에 익숙해 있으며 감히 항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의 제기는 있을 수 없다.

 

이런 풍토를 가진 기업의 작품이 시장에서 맞아떨어지거나 먹혀들 리가 없다. 예컨대 자신들은 모르겠지만 유저들은 다 안다. 게임을 하다보면 막히고 일방적이고 마치 군림하는 듯하다. 그래서 뒤집어 보고 싶은 데 그 것 조차 가로 막혀있다. 규칙적인 것 같지만 맘대로인 것이다. 게임 운영은 유저보다 대표의 눈높이에 맞춰져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기업에서 창의적인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숲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과 같다.

 

반면 창의적 리더십에 의한 기업은 시스템적으로 묶여 있다는 게 특징이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고 하니까 공산품 제조회사 분위기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톱니바퀴를 통해 파워를 내고 톱니바퀴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뜻이다. 이런 대표의 기업에는 불통이란 게 있을 수 없다.

 

항상 돌아가야 하니까 전원을 끄거나 켜는 일을 리더 맘대로 할 수 없다. 수평적인 관계를 통해 조직을 이끌어 조직원간 눈높이 또한 비슷하다. 이런 기업은 또 대표보다 회사가 우선이다. 명예의 몫도 대표보다는 회사다. 그리고 독선과 아집의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화와 양보를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창의적 리더십에 의한 기업의 작품에는 범용성과 함께 예술적 미와 재미가 동시에 묻어 나온다고 한다.

 

게임계가 나름 성상이 쌓이고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창의적 리더십보다는 자신의 카리스마나 이를 지키기에만 매달려 온 게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또 그런 안이한 자세로 말미암아 기업풍토와 조직 그리고 작품 개발에 영향을 준 게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가 뛰어났던 세조는 조선 왕조의 안정된 기반을 닦는 데는 성공했으나 평생 조카를 사사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고 끝내는 당쟁과 사화의 화근을 제공하는 큰 단초를 남기고 말았다. 반면 창조적 리더십을 평가받는 세종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치적과 업적을 쌓았다. 세종은 스스로 벤처 CEO를 자처했고 집현전은 세종에 의해 벤처기업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면 맞다. 카리스마보다는 인내와 성실로 덕의 정치를 구현한 세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군주 가운데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군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만들어 내세운 작품이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는다면 자신의 리더십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을 통한 창조적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 것인가. 선택은 게임계, 기업 CEO, 다름 아닌 그들의 몫이다.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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