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부산에서 열린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를 계기로 또 한번 느낀 것은 업계의 부익부 빈인빈 현상과 이로 말미암은 양극단의 부조화였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특성이기도 하기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업체들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업체들은 말 그대로 안방에서 밀려난 주변인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런 식의 전시회가 계속된다면 과연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일각에서의 의문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들러리를 선다는 자괴감 뿐 아니라 있는 자(메이저)들을 뒤에서 받쳐 줄만 한 업체들 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에서 기초한 얘기다.

수출 상담 등의 지원을 위해 마련된 B2B관은 그래도 가난한 게임업체들의 언덕이 됐다. 화려하지 않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도 아니었지만 미래의 꿈을 안고 며칠간의 둥지를 틀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실낱같은 희망이자 불꽃을 지핀 보금자리였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때다. 그런데도 이런 현상에 대한 사태의 심각성을 정부와 관계자들이 제대로 파악하지도, 아니 들여다 보지도 않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대로 수출실적을 보이고 시민 사회단체 등 일각에서 딴지를 걸어와도 견뎌내니까 그냥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솔직히 게임계는 지금 몸부림을 치고 있다. 영세 게임업체들은 자금난으로 줄 도산의 위험에 처해 있고 중견 게임업체들은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 중국 게임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메이저들 사정도 엇비슷하다. 일부 메이저는 사실상 스튜디오를 버리고 배급사(유통)일만 맡고 있다. 이 경우엔 시장이 더 혼탁해 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적지 않은 우려를 사고 있다.

그런데도 그 길을 선택하고 있다. 수출은 이미 뒷전이 돼 버렸다. 외형적으로 드러난 업계의 최근 자화상은 높은 계곡 위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태평하게 강 건너 국회만 쳐다보며 부처 간 핑퐁게임만 즐기고 있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여론의 향배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면서도 시의 적절한 대책마련에는 아주 둔감하다는 것이다.

몇주 전 정부측 인사와 업계 대표들이 회동한 자리에서 나온 정부측 고위 관계자의 말이 때 아니게 구설에 오르고 있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면 맞다. 의도적인 발언인지 아니면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한 언급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모두 발언은 게임계 CEO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이 당국자의 발언 요지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경색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는 점과 오픈 마켓 법안에 대한 국회 처리가 연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곁들여 졌다. 그리고 전반적인 산업 동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앞으로 육성책 마련보다는 규제책 마련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어찌 들어보면 아주 원론적인 얘기였고 정부 당국자라면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기대에 비껴간 낭패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것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정부가 앞으로 시어머니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예고탄식 엄포로 해석했고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힘겨루기에서 여성가족부에 크게 밀리고 있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일부 게임업체 대표들의 표정은 더 심각했다고 한다. 예컨대 주무부처 고위 관계자가 사회부처 사람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규제책을 언급한 대목에서 실낱같은 희망보다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를 다시 해석하면 정부측 관계자가 게임계를 가볍게 보고 쉽게 말을 했거나 아니면 발언 진위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던진 말로 밖에 이해할 수없는데 , 업계의 한 대표의 발언을 들어보면 산업계는 전자로 받아 들이는 듯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 산업을 관장하는 주무부처 관계자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얘기를 마치 남의 집 얘기하듯이 아주 쉽게 그 것도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규제책을 언급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정부측 관계자로써 해선 안될 말이었다는 것인데, 이처럼 정부측 관계자의 얘기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면에는 문화부가 최근 1∼2년 사이 산업계를 위한 뽀족한 육성책이나 부양 수단을 내놓지 못한 것도 한몫 한 때문으로 보여 진다.

언필칭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민간기업은 불과 몇달, 몇미터 앞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구조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유기적으로 움직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우왕좌왕한다면 산업경제가 제대로 굴러 갈 수 없다. 더욱이 양극화의 현상으로 하부구조가 망가져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마당에 규제방안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산업계에 대해 문을 닫으라는 말과 다름아니다.

정부가 사회 분위기를 빌미로 슬그머니 게임계의 손을 놓으려 하는 가. 자본력을 갖춘 메이저들은 그렇다 손 치고, 부익부빈익빈의 양극단에서 몸부림 쳐 온 키 작은 업체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들을 그대로 산업계의 주변인으로 내 모는 것도 모자라 아예 이 사회로부터 격리하거나 객으로 밀어 낼 참인가. 그런데 그 방법보다는 내각에서 좀 더 논리적으로 치열하게 싸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정부가 킬러콘텐츠의 양산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선봉에 서 있는 게임을 잡으려 들고 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양극화 현상이 좁혀지는 게 아니라 더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더게임스 모인 편집국장 inmo@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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