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오늘날의 게임이 보여주는 일견 유치하고 환상적이고 공상과학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 대한 탐구이며 사색이고 진지한 질문이다.

 

인간은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진화하고 있는 존재이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20억년 전에 우리는 박테리아였고 5억년 전에 우리는 물고기였으며 1억년 전에 우리는 쥐였다. 천만 년 전에 우리는 원숭이였고 백만 년 전에 우리는 간신히 불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낸 원시인이었다. 100년 후의 우리는 무엇일까. 진화의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되어 왔다.

 

게임은 21세기 인류 진화의 최첨단에 서 있는 스토리텔링 양식이다. 스토리는 지배계층이 합리적이고 최종적이라고 주장하는 현존질서를 유일한 리얼리티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현존질서를 넘어서는 자유의 영토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상상력과 이미지들을 창조한다. 스토리는 당대 사회에서 가장 하찮고 유치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다룬다. 미래는 바로 그와 같은 현실의 주변부에서 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미래의 현실을 선취(先取)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할 때 우리는 게임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문화콘텐츠임을 알게 된다. 현존하는 어떤 이야기 예술도 게임만큼 파격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우리는 추한 오크 종족의 한 사람이 되어 그 애환에 동참하고 심지어 저그 종족 같은 흉측한 갑각류와 자기동일시를 한다. 게임에서 우리 활동의 무대는 현존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낯선 시공간이다.

 

한국 사회는 게임을 바라보는 낡고 시대착오적인 편견들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돌아온 영화감독이 ‘예술가’이며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수출하는 게임개발자는 ‘업자’이다. 예술가는 나비넥타이를 매고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고 업자들은 허둥지둥 협회로 불려와 돈이나 내놓으라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이야기하는 컨버전스 현상은 고도화되고 일상화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초국적 디지털 생태계는 영어와 컴퓨터 언어라는 표준화된 공용툴을 매개로 보편적인 인류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미셀 위나 하인즈 워드, 다니엘 헤니 같은 국가복합적 아이콘들이 문화의 전면에 부각되었다. 이 같은 초 국가성과 초 지역성은 국지적인 엘리트 집단이 주도하던 문화를 해체하고 재편하고 있으며 이러한 민주화와 다문화화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게임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탄생시킨 포스트 휴먼이다.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현실의 고향보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사랑스러운 풍광과 아름다운 추억과 밤늦게 접속해도 생기발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고향을 더 사랑한다. 그것이 우리 영혼의 고향이다.

 

인간은 게임이 창출하는 광활한 네트워크와 아름다운 가상세계에서 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악마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이 그 자체로 인간성의 새로운 도약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게임과 더불어 일련의 고통과 변화를 겪으면서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대안들을 구축해갈 것이다.

 

 

[이인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lyouc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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