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己丑年) 신년하례식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09년 절반이 흘러갔다. 초중고교와 대학생들은 이미 기말 고사를 마치고 여름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곧 집으로 배달될 1학기 성적표에 따라 학생 당사자는 물론 부모들의 희비마저 엇갈린다. 기업들과 마찬가지다. 지난 6개월동안 열심히 달려온 경영 성과를 평가하고 계량화하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게임 산업계의 상반기를 정리하려고 지난 기사를 다시 살펴봤다. 웹 서핑 화면에 노출된 제목들은 온통 장미빛이다. 전세계적인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게임 시장만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게임 상장사의 상당수는 분기마다 최고 매출 기록을 갱신했다.

 

본지가 10개 상장사와 넥슨, 드래곤플라이 등 주요 12개 업체의 상반기 매출을 자체 집계해 봤더니 전년 동기 대비 최소 20% 이상 성장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전체 경기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실적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거둬 들인 것으로 나타나 게임이 수출 효자 산업으로 확실한 자리 매김을 했다.


덕분에 게임주는 훨훨 날았다. 엔씨소프트를 비롯한 게임주들은 상승 랠리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조이맥스를 비롯해 상장을 앞둔 업체들에 천문학적인 공모 자금이 몰렸다. 거품론이 제기될 정도로 게임 업체들은 주가를 한껏 높였다.


상반기동안 산업계에서 부각된 이슈를 살펴보아도 평소보다 후한 점수를 받을 것 같다. 과거 ‘바다이야기’나 사행성 게임, 게임 중독, 모방 범죄 같은 부정적인 측면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굳이 언급하면  각 산하 단체와 기관에 MB 정권의 실세들이 내려온 ‘낙하산 인사 논란’ 정도가 문제가 됐다. 이 정도면 게임 산업계의 상반기 성적표는  ‘올 A’이다.


일선 학교에는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라는 것이 있다. 담임 선생님이 개별 학생의 출결 상황, 상벌 봉사 활동 등을 기록하는 문서이다. 성적표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수치로 계량화한 것이라면  학생부는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학생의 발달 상황 등을 기술한다.


게임계의 상반기 학생부가 있다면 ‘외화내허증(外華內虛症) 징후가 보임.주의관찰 요망’이라고 써넣고 싶다. 이 병증의 가장 뚜렷한 징후는 중간 허리층이 약해지고 선순환 구조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상반기 게임 산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비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무엇보다도 양극화 현상이 극에 달해 소위 메이저라는 몇몇 업체들은 화려한 실적을 냈지만 수백개에 달하는 중소 업체들은 枯死 직전이다.


더 심각한 것은 게임 산업계 내부는 물론 외부의 정책 담당자나 기관들이 이같은 상황을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한다는 것이다. 각종 통계치나 메이저 기업들의 실적, 주가 등을 보면 게임 산업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內虛症’을 알수가 없다. 설령 징후를 눈치챘더라도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몰아세우는 것이 부담스러워 애써 눈을 감아 버린다.


지난 3월 한국게임산업협회 4기 집행부 출범식에서 김정호 회장은 3대 목표를 제시했다. 좀 길게 이야기 했지만 요약하면 수출촉진, 건전 게임문화 조성, 그리고 협업과 상생의 선순환적 산업 발전 등이다. 이중 앞선 2가지는 어느 정도 진척되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산업계의 협업과 중소기업과 메이저 기업 간의 상생에 기초한 선순환적 산업 발전은 오히려 뒷 걸음질 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협회가 본격 추진키로 한 ‘그린 게임 캠페인’ 조차도 중소기업들과의 협업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중소기업과의 상생이라는 문제에 있어 산업계와 협회는 모두 F 학점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더게임스 이창희 산업부장  changhlee@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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