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규남 한국게임산업진흥원 원장
 우리나라 온라인게임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너무도 완벽한 환경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시대를 앞서가는 개발자들이 있었다. ‘천재’라 불리우는 송재경, ‘아버지’로 통하는 김학규가 그랬다. 여기에 정부의 IT 육성 의지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가 전국을 거미망처럼 연결했고, 그에 발맞추어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 수 없는 PC방이 속속 들어섰다.
 
  패키지 작품의 유통체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개발사들에게 직접 배급할 수 있는 온라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출시되면 그날로 불법복제되던 게임CD의 악몽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다방’과 같은 법을 적용받던 게임제공업소가 ‘문화’로 인정되면서 육성 대상이 된 것도 이 시기다. 결과적으로 게임산업은 매년 두자리수 성장을 거듭해왔고 온라인게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과연 앞으로 이렇게 완벽하리만큼 훌륭한 조건이 다시 갖추어질 날이 올 것인가. 최근 급변하는 게임산업은 일면 제약산업과 닮은 점이 있다. 제약업계는 그동안 복제약 개발, 완제 의약품 수입, 리베이트를 통한 영업 등 비교적 ‘수월한 장사’를 전개해온 면이 있다. 하지만 시장이 개방되고 유통체제가 다변화되면서 개발능력과 효율적 유통체계를 갖추지 못한 제약업체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국내 대표 게임기업들도 수백억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가 수차례 실패하면서 해외 게임의 온라인화를 새로운 모델로 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또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지 10년이 되가지만 아직까지 이를 대체할 e스포츠 종목을 찾지 못해 저작권사로부터 중계권 문제 등의 압박을 받고 있다. 온라인업체와 PC방사업주들이 과금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제약업계와 중간 도매상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불법복제가 게임산업 그 자체였던 30년전을 돌아보면 굴지의 해외 게임사가 한국기업과 손을 맞잡게 된 것은 놀라운 발전이요, 경이로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엔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 있다.
 
 다시 제약업계의 경우를 살펴보자. 최근 국내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판권 계약 만료 이후 이를 회수해 직접 판매하거나 다른 제약사와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식의 공격적 영업을 감행하고 있다. 신약개발 능력과 효율적인 유통체계를 갖추지 못한 제약사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영업해온 내수 지향형 게임 업체들이 교훈 삼아야 할 부분이다.
 
 오디오 분야에 있어 정상급 업체인 보스(BOSS)에 대한 오디오 마니아들의 신뢰는 무한에 가깝다. 최근에는 세계의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다투어 명품 카오디오를 통한 명차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보스와 손을 잡고 있다. 이러한 보스의 성공에는 적극적인 R&D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익의 100%를 R&D에 재투자하는 보스의 철학이 바로 그것이다. 직원의 90%가 엔지니어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중요시 하고 있다.
 다행히 게임업계에도 연구개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2000년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의 전신인 게임종합지원센터에서 게임연구소와 게임아카데미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조이맥스, 게임빌, 지오인터랙티브 등이 R&D 센터를 설립해왔다.  최근 엔씨소프트가 대규모 R&D 센터를 설립하고 연구개발에 투자를 강화키로 한 것은 자사의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린 계기도 되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R&D 투자가 결코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세계적 게임업체들과 무한 경쟁을 해야하는 게임산업에서도 R&D 경쟁력이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때다.
  kchoi@kog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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