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 놀이터는 놀이를 통해 리더로서의 역할과 협상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바쁘게 오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잊혀진 공간이 돼가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어디에서 리더십과 협상능력,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까.
 
  인터넷이 나타나기 이전의 게임은 TV에 연결해서 이용할 수 있었던 ‘벽돌깨기’나 오락실의 ‘갤러그’ 같은 것이었다. 이들 놀이는 단순한 손동작과 눈 움직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시간 보내는 것 외에 특별히 도움되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반면에 현재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의 많은 수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사회를 배경으로 역할 분담 놀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온라인게임이다.
 
  이런 종류의 온라인게임에서 게임 속의 캐릭터는 사이버 공간에서 나를 대신해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간다. 또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 혹은 사회를 이룬다.  
 
 이 때문에 가상 사회 안에는 경제 시스템도 있고, 수천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참여하다 보니 현실보다 더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도 발생한다. 온라인상에서 사회와 인생을 경험하고 삶의 원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무기나 갑옷과 같은 각종 재화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거래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비싸게 내놓고, 반대로 팔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온라인게임을 통해서 배웠다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수요곡선이나 공급곡선과 같은 경제학 용어는 모르지만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화한다는 경제학의 제1법칙을 게임을 통해 익히고 있는 셈이다.
 
  일본,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게임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 디지털콘텐츠협회는 최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게임을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장르로 규정하고 이를 분석한 ‘시리어스 게임의 현상조사보고서’라는 자료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는 국방, 의료, 공공기관을 비롯해 인재양성, 환경문제,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해 온 게임의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학습용 게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군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습용 게임을 활용하고 있다. 또 2010년까지 미국에서만 시리어스 게임의 시장규모가 약 3억6000만달러(약 3573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영리연구소인 호프랩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질병극복게임 ‘리미션’을 만들었다. 개발과정에는 비디오게임 개발자와 애니메이션 전문가, 암 전문의, 세포생물학자, 심리학자에 소아암 환자까지 참여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34개 의료기관에 있는 13세에서 29세 사이의 암환자 37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리미션 게임을 한 환자들은 질병에 대한 이해와 자신감이 증가했으며 게임을 통해 치료효과를 확인한 아이들은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게 됐다고 한다.
 
  유엔 산하단체인 세계식량계획(WFP)은 세계 기아 실태와 구호활동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푸드포스’ 라는 게임을 개발해 보급에 나서고 있다. 이 게임은 인도양의 한 가상의 섬에서 헬기로 구호가 필요한 집단을 조사하고 예산을 감안해 구호 음식의 영양을 구성, 구호 물자를 배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게임을 할 때 아이들은 집중력이 높아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게임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고 게임을 할 때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어떻게 잘 활용하고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davinci@ncsof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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