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게임물등급위원회 위원장>
  몇해 전 일이다. 모 방송국 이사회에 해당하는 기구의 이사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가 엄청나게 당했다. 교수 출신의 70대 원로로 그때까지 험한 꼴 안보고 살아왔던 그는 자식뻘 되는 의원으로부터 치욕적인 추궁 등 견디기 어려운 수모를 당한 얼마 뒤 자진해서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다시는 국정감사장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 자진 사퇴의 한 원인이었다. 17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지난 주말로 끝났다. 게임산업이 소관된 문화관광위에서도 열띤 질의답변이 있었고, 이번 국감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깃거리도 나돌았다. 예를 들어 한 야당의원으로부터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집중추궁을 당한 한 영화관련 기관장에 대해서는 동정론이 나왔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지만 주어진 질의시간 내내 다른 기관은 다 젖혀두고 한 기관에 대해서만 공격하는 것은 물론, “후안무치, 뻔뻔” 운운하는 모욕적 표현이 거듭돼 상당히 경악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감장에 있었던 한 참석자는 “그런 치욕을 당하고 스트레스 받아 병이 나지 않을지 걱정되더라”고 말할 정도였다.
 
  국정감사를 민주주의의 필수품처럼 여기고 있는 분들이 뜻밖으로 많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감은 민주국가 의회의 보편적인 권한이나 제도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서 세계에 불과 몇 개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제도이다. 대부분 나라의 의회들이 법제정이나 예산심의 등의 권능을 갖고 필요할 때마다 국정을 ‘조사’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20일의 기간을 특정해 국정을 ‘감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국감은 지난 1972년부터 16년간 폐지되었다가 1988년에 부활되었다. 국정감사 진행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평소 일반 국회활동의 대정부질의나 국정조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기간이 특정되고 질의와 답변자료가 집중되니 뭔가 색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 때문에 ‘국감 무용론’도 나온다. 국회가 평소 주어진 임무를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의원들에게 필요 이상의 특권의식을 주고,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면서 주목받을 기회로 생각게 할 개연성이 큰 이 제도를 존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의식인 셈이다.
 
  이번 국감에 참석했던 필자도 다양한 소감이 있으나 너무 개인적인 것이어서 밝히지 않으려 한다. 다만 게임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준비에서 드러난 관심과 애정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국 곳곳에서 나도는 불법PC방의 불법 전단지를 수십장 모아 보여주며 ‘제2의 바다이야기 사태’를 예방하라고 강조한 의원, 불법온라인 게임의 해외서버 대포폰 차명통장 문제를 정성껏 준비하고 인터넷포털에 대한 행정명령권 필요성까지 정확하게 제시한 의원, 게임의 사행성 선정성 폭력성에 대한 대책을 집요하게 묻는 의원.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게임산업의 발전과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확고했고 관심은 컸다. 그러나 왜곡된 정보나 악성 제보에 근거한 정치공세 또한 없지 않아 안타깝기도 했다. 국정감사는 여전히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keyman@gr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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