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성매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나 성인가해자들을 상담하거나 교육하는 일이 많다. 때로는 잔혹하다 할 정도의 폭력을 저지르고도 장난스럽게 웃으며 얘기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재수없게 걸렸다며 자신을 더 억울해하는 가해자들이 있다. 잘못이 있긴 하지만 처벌이 지나치게 과하다며 항변하거나 원인 제공을 한 피해자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임에도 오히려 비난을 받는 것이다. 상담에서 뿐만 아니라 언론보도를 접하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성폭력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처 신고하지 않거나 보도되지 않은 사건까지 추정한다면 성폭력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성폭력의 경우 신고하는 비율이 약 10%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개인적, 사회적 능력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공감능력이 낮으며 여성과 성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낮다. 이런 것도 성폭력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가해자 아닌 사람들이 없겠다하는 식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폭력은 성적 충동 때문에, 스트레스 때문에, 술에 취해서, 호기심에, 야한 옷차림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한다. 술에 취해 야한 옷차림을 하고 다닌다면 당할 수도 있다는 이런 믿음, 인식과 통념이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되게 하는 요인이다.
 
  그런데 성폭력, 폭력에 대한 왜곡된 믿음, 통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가장 현실적인 대답 중의 하나는 바로 이중적이고 폭력적인 성문화, 의식 그리고 매체를 들 수 있다. 청소년에게는 놀이터이며 또래문화 공간이며 정보를 얻는 인터넷, 대중문화를 이루는 TV 드라마, 게임, 출판물은 물론 대중가요까지 인식과 통념을 갖게 하는 중요한 매체이다. 문제는 대중문화를 만드는 매체와 게임 등에서 폭력적인 내용과 영상이 광범위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적 표현에는 성적인 선정성 역시 동반된다. 과도한 폭력적 표현은 정서적 자극이나 긴장을 주기도 하고 반사회적 성향을 조장하거나 모방심리를 부추겨 폭력지향적 행동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영상물이나 게임 등이 폭력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강한 연관성이 있음도 무시할 수 없다.
 
  배려하는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도, 폭력적인 관계맺기 방식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된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낮추는 것은 관계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가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 기술이 의외로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보다  또래나 매체 그리고 게임, 놀이 등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 갈등을 해결하거나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의사소통의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에 맞서 선과 악이 싸워 결국 선이 이기는 영화나 악을 물리치는 게임이 사실은 싸우고 죽이는 폭력적인 방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내용과 과정이라고 본다.
 
  영리 목적의 상업성을 추구하는 업계의 특성상 폭력과 선정성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겠지만 아이들의 믿음과 신념을 심는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문화 제작자의 의식이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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