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내일청소년상담소 소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명절이 찾아왔다. 온갖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게 열리고 그 열매를 맺을 터전을 마련해 준 조상께 감사를 드리는 추석이다. 추석은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친지들이 또는 같은 공간 안에서 지내도 소통하지 못했던 가족들이 오랜 만에 함께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며 전통 놀이를 즐기는 날이다. 조상의 묘를 벌초하고 차례를 지내며 팥, 콩, 밤 등의 소를 넣은 송편을 만들고 또 나눠 먹으면서 아이들은 가풍을 익히고 정을 나눈다.  먹거리와 놀거리를 통해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역사’적인 날인 것이다.
 
  그런데 ‘추석명절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냥 즐겁고 의미가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명절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불편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고 한다. 이는 남성중심의 제례형식 안에서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남성은 놀이와 손님맞이에, 반면 엄청난 가사노동은 전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역시 부모님 선물이나 명절 비용 등에 대한 부담과 특히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평등한 역할을 하기도, 안하기도 어려운 난감한 처지에서 공격과 비난받는 것이 힘겹기만 하다. 서로 행복한 ‘주체적’ 명절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게임에 몰두하거나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낸다.
 
  호주제 폐지, 여성의 고위직 진출 확대, 성별 영향평가에 따른 국가 예산배정 등 오랫동안 차별받아오던 여성인권이 존중되고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불평등과 차별적 양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역할에 대한 의식도 많이 바뀌었고 가사분담을 하는 남성도 많아졌지만 평소에 하는 일과 명절은 별개라는 생각이 일반적인 것 같다.
 
  또 세대를 넘어 수많은 친인척과 집안의 어른들이 명절의 형식이나 내용을 결정하다 보니 평등한 성역할, 소통하는 가족모임에 대한 변화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가오는 명절, 올해의 추석은 조금만 변화시켜보자. 예전 명절이 조상을 기리는 제례중심이었다면 오늘날의 명절은 가족만남의 의미가 더욱 큰 날이기 때문이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놀이를 하며 서로의 몸이 부벼지는 날이다. 몸으로, 말로 소통하는 날인 것이다.
 
  소통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는 데서 시작된다. 명절 계획을 함께 세워보자. 추석에 필요한 일들과 가사에 대한 가족의 역할 분담, 가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전통문화나 놀이를 직접 준비하고 체험해보는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부엌에서만 일하던 여성도 놀이판으로 모이자. 게임중독이 의심스러워 아이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뤘던 부모라면 오히려 인터넷 게임도 추석 멍석 위에 펼쳐보자. 윷놀이, 투호놀이, 쌀보리놀이도 좋고 보드게임, 인터넷 게임도 좋다.
 
  웃고 즐거워하며 소통할 수 있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을 것 같다. 그런데 실천하려고 하니 성평등적인 게임, 최소한 추석의 의미정도는 알 수 있는 게임, 온 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게임이 있기는 한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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