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게임물등급위원회 위원장>
 
  지난 주말까지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이상벽 첫 사진전, 나무이야기’가 열렸다. 이 씨는 우리나라 방송계의 전설이다. 올해 환갑인 그는 미대를 졸업하고, 십 수년간 신문 잡지의 연예담당 기자를 하다 ‘주부 가요열창’ 등의 사회를 계기로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가장 잘나가는 MC가 되어 방송계를 누볐다.
 
 구수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의 그는 보스기질이 대단하고 주량도 엄청나서, 많은 방송연예계 후배들을 몰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방송가 소식통들에 따르면 그렇게 몰려다니기 좋아하던 그가 1년여 전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도 흔적이 잡히지 않을 만큼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1년 반 후, 이 씨는 사진작가로 변신해 첫 전시회를 들고 지인들에게 돌아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만을 찍은 69점의 이번 전시회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도 범상한 작품들이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닌 땀과 혼의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를  지도해 준 사진작가 최병관 씨는 세 가지를 지적하며, 이 씨를 칭찬했다. 이 중 최 작가가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그의 겸허하고 성실한 태도와 그 나이에도 무엇이든 새로 할 수 있다는 정열이었다.
 
 갑자기 이씨 얘기를 꺼내는 것은 최근에 본 외신기사 한 토막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선 요즘 인터넷과 컴퓨터에 빠져 ‘방콕’(방에 콕 박히기)이 일쑤인 자녀들에게 구슬치기, 공차기, 술래잡기 등의 전통적인 옥외놀이를 가르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등에 과몰입하는 자녀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거나, 상상력을 잃게 되거나, 세대간 공감의 폭을 넓히지 못할 것 등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사라져 가는 옛놀이’를 가르치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게임계가 이상벽 씨의 대변신처럼 건전게임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뭔가 확실하게 결단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게임과몰입으로부터 자녀를 격리하려는 부모들의 움직임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도 같이 했다.
 
 다행히도 몇몇 선도적인 업체들은 최근 건전게임문화 조성이 업계의 장기적인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 아래 여러 형태로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NHN과 MBC게임이 게임산업진흥원,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손잡고 ‘2007 함께하는 게임문화 공동캠페인’에 나서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NHN한게임은 지난 11일부터 장애우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돕거나, 게임을 즐기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캠페인 프로그램 등을 펼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3대 회장인  권준모 넥슨 대표도 “청소년들의 게임과몰입과 운동부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계획을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강구하고 있으며, 곧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게임남 문자녀’인 10대 우리의 자녀, 동생들은 게임하는 시간이 TV 시청시간보다 많은 ‘게임세대’이다. 이들이 건전한 게임문화를 익히고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 줄 책임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리고 이 일에는 정책당국, 관련기관, 학부모단체 등과 함께 업계가 큰 책임감을 갖고 앞장서야 마땅하다.
 
 10대들의 게임포털 연중 검색어 1위는 단연 ‘게임’이다. 반면 학부모단체, 독서진흥회 등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 1위 또한 ‘게임’이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우리 게임업계의 장기 전망도 결코 밝지 않다. 굳이 청소년위원회나 학부모단체들의 입장을 거들 것도 없이, 청소년 게임과몰입 문제에는 우리 게임인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해결을 꾀해야 한다. 특히 선도적 업체들이 이상벽씨 처럼 보다 과감한 변화의 자세를 가져줄 것을 당부드린다.
 keyman@gr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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