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게임물등급위원장
 
   봄을 재촉하는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주말 저녁, 도쿄 아카사카의 한 호텔방에서 약간의 흥분과 걱정 속에 창밖을 바라본다.
 비 때문에 후지산은 보이지 않지만 50층 안팍의 마천루들이 줄줄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도쿄의 최첨단 지역은 경제력 세계 2위 일본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일본의 게임업계와 일본에서 정말 놀라울 만큼 보무당당하게 잘해주고 있는 우리 게임업체들을 둘러봤다. 내친김에 우리나라 ‘게임물등급위원회’에 해당하는 일본‘CERO'(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등급기구)를 방문해 의견을 교환하고 두 기관 간 협력의정서 체결에 합의하는 기회도 가졌다.
 
   도쿄의 최신 대형위락시설 오다이바에 자리잡은 세가의 ‘조이폴리스’ 방문과 일본 업계관계자들 면담을 통해 피부에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일본의 대단한 실력과 그보다 더 무서운 잠재력이다. 콘솔과 아케이드에 집중돼 있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일본은 역시 게임강국이다. 특히 두려운 것은 잠재력이다. 일본은 이미 아케이드 게임장에 온라인게임을 장착하는 것을 비롯해 콘솔게임을 온라인화 하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터넷망의 약점이 있지만, 일본의 뛰어난 기반기술과 세계적인 마케팅 능력을 고려한다면, 온라인게임에서도 일본이 머지않은 시기에 강자로 등장할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로서는 더욱 갈고 닦고 다듬어 앞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업체들의 일본 원정활약은 눈부실 정도라고 해도 좋을만했다. ‘메이플 스토리와’ 테일즈위버‘를 일본에 뿌리내린 넥슨재팬은 가까운 시일 안에 일본증권시장 상장을 계획하고 있을 만큼 여러 면에서 튼실했다.
 
 특히 일본에서 유일하게 아이템 거래를 회사가 직접 중계하고 경매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어, 아이템 거래에 관한 찬반입장을 떠나 일단 참고해 볼 자료는 될듯했다.
 
 게임포털 한게임을 운영하는 NHN재팬은 회원 2000만명에 한달 평균 로그인 200만명이상, 자산 평가액 3조엔 이상의 대형회사로 성장해 있었다. 직원 500명에 일본인이 90%이상이니, 삼성 현대 등 어느 한국 재벌그룹도 이룬 바 없는 일본 내 최대 한국기업이다.
 이 회사의 모리카와 부사장은 “한국에서 인기있는 고스톱·포커류 대신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장기·마작 등을 주력으로 바꾸고, 일본인의 특성에 맞게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한 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매년 25% 이상의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NHN재팬은 “일본이라는 거대시장을 놓치면 안 된다”며“내년까지 직원을 800명으로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엔씨재팬에서는 ‘리니지’의 변함없는 인기를 실감했다. 작년 한해 이게임으로만 일본에서 30억엔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리니지 2’ 게임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메뉴얼북이 일본에서 수십 권 출간되었는데, 각 권마다 2만부 안팎 씩 팔릴 정도이다.
 
 며칠 전 한국의 한 일간신문에서 영화 ‘괴물’과 ‘리니지’ 게임의 산업적 비교를 다룬 기사가 생각났다. 한마디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리니지’의 산업적 효과와 기여가 컸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영화진흥기금으로 올해 1000억원을 예산에 책정한 정부가 게임진흥기금에는 눈을 감았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을 떠나던 며칠 전 한국의 언론에는 ‘가수 하리수가 5월에 결혼하는데 그 예비낭군을 2005년 초 리니지 게임을 통해 사귀게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렇다. 게임은 사람을 사귀게 하고, 현실에서 잃어버린 이상과 정의감과 인간 본연의 덕성을 되찾게도 한다. 그러면서 문화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 부정적 요소는 줄여가면서, 적극 장려하고 육성해야 할 효자산업이다. 일본에서 며칠 장님 코끼리 만지듯 게임업계를 봤지만 그래도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습니다! 더 힘들 내세요.”
 <keyman@gr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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