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백년해로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고 성문화는 더욱 개방되고 있는데 서른 즈음에 결혼한다고 생각했을 때 평균 잡아도 50년을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한다.
 
 백년해로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꼭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살아야만 행복한 것도 아니다. 헤어져야 할 이유가 충분히 많은 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혹은 자식들을 위해서 참고 사는 게 과연 행복일까. 모든 행복의 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가장 사적인 결혼이나 섹스 문제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법적으로 부인 혹은 남편이 있는 데 다른 남자나 여자를 만나 육체관계를 갖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일부일처의 법적 제도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능적 욕구나 행복을 위해서보다는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형성된 것 아닌가.
 
 그 체제에서 태어나 그렇게 교육받고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여러 명의 성적 파트너를 갖는다는 것이 충격이겠지만, 환경에 따라서 인간의 삶은 다양하게 변한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부인과 섹스를 하게 하는 에스키모인들의 풍습이 야만적인가, 모계 사회에서 한 여성이 다수의 남편을 거느린 것은 불법인가, 아랍 권에서 한 남성이 다수의 부인과 살고 있는 것은 도덕에 위반되는 것인가.
 
  현실적으로, 성문화가 개방된 사회에서 한 파트너와만 50년 동안 섹스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바람피운다고 말할 때의 바람은 말 그대로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가벼운 바람이 태풍이 되고 본질을 뒤흔들 수도 있다. 어떤 과학적 예측으로도 바람의 풍속과 세기와 방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듯이 인간의 내면에 불고 있는 바람 역시 마찬가지다.
 
  두 명의 유부녀의 일탈 행위를 다루고 있는 ‘바람 피기 좋은 날’은 매우 뻔뻔한 영화다. 사랑으로 위장적 제스처를 쓰는 게 아니라 섹스에 대한 노골적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서의 섹스는 아니다.
 
 두 명의 유부녀가 각각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서 바람을 핀다. 왜 만나는지에 대한 설명은 튼튼하지 않다. 그녀들이 남편 아닌 남자들과 섹스 하는 모습만 말초적으로 담겨져 있다. 그것도 섹스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일탈의 상황만 제시된다. 즉 호기심만 있고 탐구는 없다. 현상만 있고 실체는 없다.
 
  이슬(김혜수 분)은 한참 연하인 대학생(이민기 분)을 유혹한다. 작은새(윤진서 분)는 증권사 직원인 여우두마리(이종혁 분)와 모텔에 들어간다. 두 명의 유부녀 모두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온라인 커플들이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이 만남의 매개체로 제시되고는 있지만 사이버 문화에 대한 탐구나 통찰은 없다. 단지 유부녀들이 외간 남자를 만나는 공간으로서만 제시된다.
 
 영화는 오프라인, 즉 현실에서 두 불륜 커플이 만나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부분이 모텔 신이다. 그러나 18금의 야한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는 이슬 역의 김혜수가 장식한다. ‘타짜’ 이후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을 가진 올해 서른아홉인 이 중견 배우는 당당하고 뻔뻔한 대사를 연이어 날리며 상대역인 대학생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지만 진짜 기습공격을 당하는 사람은 관객들이다.
 
 성경험이 별로 없는 연하의 남자를 쥐락펴락 가지고 노는 노련한 연상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관객들의 말초적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심은 확신이 된다. 바람피우는 여자들을 통해 좀 더 본질적인 문제들을 제시하거나 탐구하려는 의도는 애초에 없다. 관객들의 본능을 자극하기만 하려는 가벼운 시도들로 영화는 넘쳐 난다.
 
  이슬이 대담함과 뻔뻔함으로 연하남을 성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면, 작은새 역의 윤진서는 은근한 내숭으로 상대역인 이종혁의 애를 태운다. 함께 모텔에 들어갔지만 곧바로 옷을 벗고 침대에 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끊임없이 남자에게 요구한다. 먼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알코올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귓가에 속삭이는 밀어를,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성행위로 돌입하는 순간까지 내러티브가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그녀의 특이한 성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자가 노력하는 모습은 웃음의 소재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바람 피기 좋은 날’은 그것 뿐이다. 그런 현상들이 어떤 파괴력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두 커플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정서를 뒤흔들려면 캐릭터의 내면이 드러나 줘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이 약하다. 또 이야기들의 현상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이야기를 받쳐주는 이념적 토대가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힘이 거품처럼 사라져간다.
 
 ‘바람 피기 좋은 날’은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와 재미있는 신의 활력 넘치는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의 부족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뒤흔드는 어떤 파괴력도 없이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바람이 되었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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