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개의 분할 화면으로 진행되는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기존의 영화 형식에 대한 실험적 도전의식에 익숙한 장르인 멜로를 결합해서 흥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뉴욕의 한 호텔. 결혼식 뒤풀이에서 만난 두 남녀. 핑크색 들러리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결혼한 상태고 검정색 정장을 입은 남자 역시 15년 연하의 여자 친구가 있다. 하지만 동갑인 두 사람은 강렬한 자석에 이끌린 듯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여자의 방으로 올라간다.
 
   결혼식 뒤풀이에서 만난 신랑 신부의 지인들끼리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장면 같지만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이다 보면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남자는 12년 전 이혼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런던에서 심장전문의 남편 그리고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 역시 12년 전 이혼하고 영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그들이 12년 전 부부 사이였다는 것을 관객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영화의 중반이 지나면서다.
 
   마치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원 나잇 스탠드’처럼 우연히 만난 남녀가 서로 작업을 걸면서 하룻밤 즐기는 것처럼 보였던 이야기의 시작은 그러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두 남녀의 과거가 드러나며 의외의 반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관객들의 눈에는 결혼식 뒤풀이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갑내기 남녀가 각각 서로의 애인 혹은 남편을 밀쳐두고 불꽃이 타오르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오래 전에 헤어진, 서로의 첫 남편과 아내를 만나 얽히고 설킨 감정의 끈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낯선 여자와의 하루’는 거의 두 사람만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비포 선라이즈’ 못지않게 영화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분할화면을 마술적으로 이용하여 긴장감과 흥미를 배가시킨다. 이미 영국 출신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필로우 북’ 등에서 분할화면의 여러 가지 가능성과 기능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바 있다.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필로우 북’처럼 다양하거거나 실험적이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린을 반으로 쪼개서 내러티브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영화형식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두 개의 화면의 대부분은 두 명의 주인공을 각각 다른 각도, 다른 프레임으로 잡고 있는 것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화면의 일부분이 겹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두 사람만으로 진행되는 영화지만 단조롭지가 않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두 사람의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두 개의 분할화면은 이렇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잡고 있지만, 때로는 시제를 달리 해서 하나는 현재의 화면을 또 하나는 과거 혹은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며 시간의 파괴나 때로는 공간의 파괴를 시도한다. 같은 시간 대 각각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크로스 컷팅 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병렬적 구성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두 남녀가 겪는 심리적 파동과 과거의 흔적, 각각 현재의 남편이나 애인들과의 전화통화가 이어지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극적 구조도 좋지만 이 작품이 거둔 성과는 연출을 맡은 한스 카노사 감독의 뛰어난 미학적 역량 때문이다. 이 작품은 도쿄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물론 도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여자 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력도 좋고 남자 역의 아론 에크하트도 모처럼 비중 있는 역으로 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신부의 옛 친구로 결혼식 들러리를 선 여자, 그리고 신부의 오빠로 결혼식에 참석한 남자. 이혼 후 오랜만에 재회한 두 남녀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낯선 여자와의 하루’는 재결합을 원하는 남자와 현재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여자의 팽팽한 심리대결로 매혹적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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