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는 착한 영화다. 나쁜 사람은 없다. 모두들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한다. 7살 지능을 가진 20살 정신지체장애우와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그녀의 젊은 어머니, 그리고 장애우가 사랑하는 의무경찰. 이 세명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장애우와 시한부 인생의 모녀 관계라는 설정은 내러티브에 새로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허브’는 너무나 상투적으로 전개된다. 작은 소품이지만 그러나 나는 ‘허브’를 보면서 몇 번 눈가가 촉촉해졌다. 전적으로, 오직 배우들의 힘만으로 영화는 긴장을 유지한다. 미숙한 연출, 엉성한 시나리오를 뛰어넘는 강혜정 배종옥의 호연은, 상투적 내러티브와 값싼 눈물을 쥐어짜는 감정 과잉의 허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브’를 볼만하게 만든다.
 
   강혜정은 치아교정 이후 첫 번째 작품인데, 그녀는 자신의 재데뷔작을 멋지게 승리로 만들어 놓았다. 문승욱 감독의 디지털 영화 ‘나비’에 등장했던 그 풋풋한 처녀는 ‘올드보이’의 미도를 거쳐 ‘연애의 목적’에서 작업남 교사와 연애를 하는 교생으로, 그리고 머리에 흰 꽃을 꽂고 “마이 아파”라고 말하던 백치미의 ‘웰컴 투 동막골’을 거쳐 ‘도마뱀’의 상큼한 모습까지 그동안 강혜정의 필모그래피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검은 턱시도우를 입고 ‘허브’의 첫 시사회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오른쪽 팔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운동화를 신은 멋진 모습이었다. 모두들 성형 이전이 훨씬 낫다고 하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허브’에서 강혜정의 연기는 그녀가 얼마나 내적으로 깊이 성숙해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7살 지능의 20살 처녀 차상은(강혜정 분).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 현숙(배종옥 분)을 잃고 차상은이 혼자 서는 이야기 ‘허브’는 또한 차상은의 사연 많은 첫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은의 어머니 현숙은 작은 꽃가게를 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 3급인 딸 상은이를 강인하게 키우기 위해 현숙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상은을 교육시킨다.
 
   ‘허브’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지체장애우인 차상은과 그녀의 어머니의 관계, 그리고 차상은이 길가에서 포돌이 인형을 뒤집어 쓴 의경 이종범(정경호 분)을 보고 첫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모녀의 관계는 암에 걸려 갑작스럽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끝난다. 첫사랑 또한 상은이 상처 받을 것을 우려한 어머니에 의해 이별로 끝난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딸이 혼자 설 수 있도록 살아있을 때 모든 것을 준비한다. 그러나 아직 죽는다는 것의 개념을 잘 알지 못하는 상은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또 동화 속의 왕자님 같은 의경 이종범을 보고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시작하지만 역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냥 가슴이 설레고 그를 보면 좋기만 할 뿐이다.
 
   ‘허브’에는 장애인 상은의 일상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랜 취재와 깊은 관찰력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땀 흘린 시나리오 덕분에 캐릭터는 생동감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들의 연결 이음새가 엉성하다. 이야기의 허점도 많다. 그러나 너무나 배역에 몰입해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강혜정과 배종옥의 연기는 모든 결점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허브’는 정신지체 장애자인 상은의 사랑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그런 장애인 딸을 놔두고 먼저 죽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의 어머니 이야기가 겹치면서 눈물 쥐어짜는 멜로 영화의 수순을 밟아 간다. 이야기는 유치한 부분도 많고 논리적 수순을 벗어나는 것도 있다. 더구나 미숙한 연출은 이야기의 리듬을 장악하지 못하고 배우들의 내면이 외적 상황과 조응하는 호흡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해 허둥거린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위대한 배우들의 힘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